골프 코스가 눈에 덮인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 코스가 눈에 덮인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한파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와중에도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가지에 자줏빛 작은 봉오리가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눈이다. 뿌리나 줄기 형태로 땅속에 묻혀 봄을 위해 준비하는 식물, 외부에 노출된 상태에서 겨울을 나는 식물들의 겨울나기 비법이 바로 겨울눈에 있다.

 

식물들은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면서부터 겨울눈을 준비한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 가을쯤에 미리 겨울눈을 만들기 시작하고 봄이 되면 겨울눈에서 새싹이 돋아나거나 꽃이 핀다. 위치에 따라 잎이 되어 자라는 부분을 잎눈, 꽃이 되는 부분은 꽃눈이라고 한다. 이 겨울눈 속에 앞으로 잎이나 꽃으로 자랄 설계도가 숨어있다. 

 

겨울눈은 겉을 둘러싼 단단한 막이나 보송보송한 솜털로 겨울의 한파를 견뎌낸다. 눈을 뒤집어쓰고 칼날 같은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식물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일조시간이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겨울눈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새싹을 틔워 꽃과 잎으로 화려한 봄의 제전을 펼친다.

 

체감온도가 영하 25도를 넘나드는 설 연휴 마지막 날 습관적으로 연습장을 찾았다. 1, 2층을 합쳐 서너 명이 타석을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도 칼날 같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한둘 골프 백을 정리하더니 결국 나 혼자만 남았다. 나 때문에 2층 난로를 켜는 것이 미안해 백을 정리했다. 텅 빈 주차장을 나서면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코발트 빛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허공에 돌을 던지면 하늘이 ‘쨍’ 하고 깨질 것 같았다. 그 심연 같은 하늘로 앙상한 가지들이 뻗어 있었다. 아우성 같은 소리가 이명(耳鳴)처럼 들리는 듯했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나뭇가지들은 앙상하게 뻗어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가지에는 매듭 마디 구슬 같은 것들이 맺혀 있었다. 한두 달 후면 꽃이나 잎을 틔울 겨울눈들이다. 짙은 자줏빛 겨울눈은 가지마다 무수히 달려 있었다. 

 

겨울눈을 보며 오는 봄의 필드를 떠올렸다. 골프와 인연을 맺은 후 매년 화려한 봄날을 꿈꾸며 보냈던 많은 겨울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초보 시절 ‘미쳤다’는 소리 들어가며 열심히 연습장을 찾은 때도 있었고 추위 핑계로 쉰 적도 있었다. 싱글을 자주 치면서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었다. 
구력 30여 년을 넘기면서 비로소 ‘겨울이야말로 골프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깨달음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연습장 찾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찬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들의 겨울눈을 보며 이 겨울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식물도 봄에 대비해 눈비 찬바람 속에 겨울눈을 가꾸는데 나름의 목표를 좇는다는 골퍼들이 겨울에 아무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어디 골퍼라 할 수 있겠는가.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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