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잉글랜드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클럽(파70)에서 열린 제149회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 우승 트로피인 클라레 저그를 형상화한 조형물.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디 오픈'(THE OPEN)은 가장 오래된 스포츠 경기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열리지 못했지만, 올해 2021년에 열린 제149회 대회는 갤러리들의 함성 속에서 치러졌다. 

아마 재난이나 전쟁 때문에 열리지 못한 기간까지 합산해서 계산한다면 이 대회의 횟수는 더 많을 것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알려진 것만큼 기록되지 않아 잊힌 것도 그만큼 많으니까.

'골프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번갈아 열리는 이 대회를 보면 골프의 원시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의 링크스 코스, 목동들이 비와 바람을 피했을 항아리 벙커, 암초가 없는 깨끗한 바닷길이라는 페어웨이, 목동과 함께 양을 지키던 양치기 개들의 다리에서 유래했을 법한 도그렉 등.

바닷가의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링크스 코스를 보면 자연과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파동을 일으킨 물결처럼 결을 이룬 페어웨이와 깊고 가지런히 자란 러프, 옆 홀과 경계를 이루는 완만한 능선의 언덕까지. 마치 신들의 놀이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고대의 신들끼리 모여서 게임을 하지는 않았을까. 북유럽의 신과 지중해의 신이 만나기 적합한 중간 지역인 브리타니아에서.

북유럽의 신 오딘은 로키, 토르, 티르, 프리그를 이끌고 서리 거인을 갤러리로 데려왔을 것이다. 지중해의 제우스는 선수층이 두터워 고민을 거듭하다 마르스에게 맡겼을 수도 있다. 물론 갤러리는 자신이 사랑한 여신들로 채웠을 것이다. 이런 막연한 상상은 '디 오픈'이 열리는 링크스 코스가 골프의 유래부터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곳에 어떤 원초적 기운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잉글랜드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클럽(파70)에서 열린 제149회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 15번 홀 페어웨이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아마추어 골퍼끼리 라운드를 하면서 내기를 할 때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뒤를 막고 할까요? 트고(OPEN)할까요?"

보통의 경우 아마추어의 스코어는 파3에서는 6타, 파4는 8타, 파5는 10타까지만 세고, 두 배로 쳤다는 의미로 '더블 파'라고 한다.

'더블 파' 이상 스코어를 세지 않고 홀을 끝내는 이유는 진행을 빨리하려는 골프장과 두 자릿수 이상의 숫자를 기록하고 싶지 않은 골퍼의 욕심이 맞아떨어진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더블 파' 이상의 숫자를 기록하지 않는 것을 뒤를 막는다고 한다. '트고(OPEN)한다'는 것은 선수들처럼 홀인 할 때까지 한다는 걸 말한다. 

스코어의 숫자는 로마 표기법을 따르는데 발음도 어렵고 외우기도 쉽지 않다. 트리플 이상을 쓰고 외울 수 있다면 골프학을 전공한 분(?)쯤으로 봐야 할 것이다.

로마 숫자가 어원인 단어로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은 영어로 된 달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의 초대 왕이었던 로물루스 뒤를 이어 왕에 오른 누마는 먼저 달력을 개혁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쟁의 신 마르스가 어원인 'march'가 1월이었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로마는 봄이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여서 'march'를 3월로 옮기게 되자 뒤를 이은 달은 그대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훗날 줄리어스 시저와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7월과 8월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는 로마 숫자로 '일곱 번째'~'열 번째'라고 한다. 

2020년 제84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타이거 우즈가 12번 홀 파3에서 기록한 셉튜플 보기(septuple bogey. 7오버파)는 그렇게 9월(september)과 연관이 있다.

▲2021년 7월 잉글랜드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클럽(파70)에서 열린 제149회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 6번 홀 그린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많아 대부분의 골프장이 산속에 자리한다. 각 홀은 우거진 숲과 나무로 둘러싸여서 탁 트인 페어웨이가 하늘과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홀은 나무 그늘로 시원하고 그린은 조명을 받고 있는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산속에 조성된 코스는 집중도가 있다. 그림에서 소실점을 찾듯이 그린이 타깃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늘 한 조각 찾을 수없는 링크스 코스는 푸른 사막처럼 보인다. 하늘과 땅, 빛과 어둠, 구름과 비 그리고 무지개와 바람까지 모든 자연이 어우러져 있지만 산속의 그것처럼 압도하지 않고 자유롭고 산만하다. 황량하고 쓸쓸할 것 같은 링크스 코스, 바람이 비를 몰고 오고 어느 순간 찬란한 태양이 순결하게 비추기도 하는 그곳에서 'THE OPEN'이 열린다.

'THE OPEN'은 모두에게 개방하는 대회다.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참여해서 실력을 겨루고 국적이나 인종, 나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는다. 올해 2021년에는 링크스 코스를 두 번 경험한 콜린 모리카와가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렸다.

'THE OPEN'은 골프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같은 대회라고 생각해본다.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라는 명성에 걸맞게 탯자리 같은 터를 찾아서 대회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그 오랜 땅에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묻혀있는 얘기가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신들이 다퉜을 대화가, 목동의 피리 소리가 떠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에 그 열린 공간으로 모여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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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장보구: 필명 장보구 님은 강아지, 고양이,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쓴다. 그의 골프 칼럼에는 아마추어 골퍼의 열정과 애환, 정서, 에피소드, 풍경 등이 담겨있으며 따뜻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장보구의 빨간벙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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