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과학자 로제 카유아.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프랑스의 사회과학자 로제 카유아.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는 13세기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태동한 이래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가장 중독성이 강한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골프 예찬론을 펼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골프 예찬의 귀착점은 결국 골프가 안고 있는 불가사의성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걸을 수 있고 빗자루질할 힘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데다 그 재미의 중독성은 어느 스포츠도 따라올 수 없다. 오죽했으면 ‘골프의 가장 큰 결점은 너무도 재미난다는 데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흘린 땀에 비례하지 않는 속성, 아침에 깨달았다가도 저녁이면 잊는 망각성, 언제라도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예측 불허성, 결코 신체조건이나 체력으로 변별되지 않는 결과의 의외성, 인생보다 더 인생다움, 신기루처럼 달아나는 목표 등 골프의 불가사의성을 대충 나열해 봐도 이 정도다. 골프는 말하자면 상식과 통념을 거부하는 특별한 운동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지팡이를 짚을 수 있을 때까지 골프채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골프의 경제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필요한 운동공간이 낭비적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골프를 통해 얻는 장점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적당한 걷기와 스윙은 유산소운동 효과가 있다. 특히 스윙은 장을 자극해 변비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집중력과 유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콜레스테롤 저하에도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고려하고 판단해야 할 사항이 많아 치매 예방에도 효험이 크다.

 

그러나 골프 중독성의 본질은 놀이로서의 속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놀이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 프랑스의 사회과학자 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 1913~1978)는 저서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유형을 크게 경쟁 놀이, 확률 놀이, 모방 놀이, 현기증 놀이로 나눠 소개했다.

 

경쟁 놀이는 공정한 규칙에 따라 경쟁자와 겨뤄서 자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놀이로 표현된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운동경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확률 놀이는 의지와 상관없이 운이나 요행, 또는 운명에 결과를 맡기는 놀이로 카드게임이나 주사위놀이 등 도박이 이에 속한다. 모방 놀이는 내가 아닌 가상의 인물이 되어보는 것으로 소꿉장난이나 연극 등이 그 예다. 마지막으로 현기증 놀이는 실제로 위험하진 않지만 일시적인 공포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즐기는 것으로, 롤러코스터나 번지점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골프는 카유아가 말한 네 가지 놀이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골프는 타인과의 경쟁은 물론 자신의 최고 스코어나 파(par)를 대상으로 자기 자신 혹은 골프코스와 경쟁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또 두 번 다시 같은 샷을 만들어낼 수 없는 정도로 모든 샷은 처음이자 마지막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확률이 낮고 우연성이 강하다.

 

우리는 특정 선수의 스윙이나 플레이 스타일을 흉내 내려고 애쓰며, 경기 중 멋진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 우리는 마치 자신이 타이거 우즈라도 된 듯 주먹을 허공에 날리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따라 하는 것은 다분히 모방성을 보여준다. 가능성이 낮은 데도 나무, 벙커, 해저드 등 코스 곳곳에 위치한 위험요소를 앞에 두고 무모하지만 짜릿한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바로 현기증 놀이의 요소로 봐야 할 것이다. 골프가 놀이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력이 40년에 가까워지면서 개인적으로 골프 최대의 불가사의성은 ‘결코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집약하고 싶다. 과연 내 뜻대로 스윙을 날릴 수 있고 원하는 스코어를 낼 수 있었다면 계속 골프채를 잡고 있었을까 반문해본다.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와 좌절, 후회를 하면서도 골프채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골프의 최고 매력은 ‘뜻대로 되지 않음’에 있지 않을까.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를 자청한 사람이 바로 골퍼가 아닐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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