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패권경쟁이 한창이던 춘추전국시대 연(燕)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자 기회를 엿보던 이웃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 침략 준비에 들어갔다. 다급해진 연 나라 소왕(昭王)은 때마침 연나라에 와 있던 소진(蘇秦)의 아우 소대(蘇代)를 불러 혜문왕을 만나 침략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
소대는 혜문왕을 찾아가 이렇게 얘기하였다.
“제가 이곳으로 오기 위해 역수(易水)를 건너오는데 마침 강변에서 조개 한 마리가 껍데기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도요새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껍데기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데 지나가던 어부가 그 꼴을 보고는 힘들이지 않고 둘 다 잡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 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 나라가 조개라면 조 나라는 도요새인 셈입니다. 연과 조 두 나라가 싸워 백성들을 피폐케 하면, 귀국과 접해 있는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실 것이옵니다.”
혜문왕은 소대의 말을 듣고 곧바로 침공계획을 접었고 연나라는 조나라의 침략을 피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애쓰지 않고 이득을 보는 경우를 뜻하는 ‘어부지리(漁父之利)’의 어원인 이 고사는 지혜만 있다면 큰 전쟁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유소연(22·한화)과 서희경(26·하이트)이 조개와 도요새처럼 방휼지쟁(蚌鷸之爭)을 벌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개막전의 우승을 18세의 신인 제시카 코르다에게 빼앗겼다.
유소연과 서희경은 12일 호주 로열 멜버른 골프장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선두에 있던 제시카 코르다가 제풀에 무너지면서 한 타 차이 공동선두로 18홀을 맞았다.
한국의 골프팬들은 LPGA 시즌 개막전을 둘 중의 한 명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둘 다 투온에 성공하면서 이런 예측은 거의 굳어지는 듯했다. 둘 다 버디 퍼팅에 실패하고 1미터 남짓의 파 퍼팅을 남겨놓은 상황. 둘 중의 한 사람만 넣으면 우승이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짧은 파 퍼팅에 실패했다.
두 선수는 최종합계 3언더파 289타로, 동타인 제시카 코르다, 루이스 스테이시(26), 브라타니 린시컴(26·이상 미국), 훌리에타 그라나다(25·파라과이) 등과 함께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2차 연장전에서 유일하게 버디를 낚은 코르다에게 우승 트로피를 넘겨줘야 했다.

국내 팬들에겐 유소연과 서희경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대회에서 만나고 한번 만나면 3~4일간 지내야 하고 동반 라운드도 많다 보니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대회장에 가보면 사실 국내 선수들은 모두가 친구 사이나 다름없음을 알게 된다. 선후배의 차이가 있을 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친구 사이이면서 하나뿐인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사이다.
골프선수들의 친구관계란 친구를 위해 내 것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그런 친구관계가 아니다.
얼굴은 웃지만 속으로는 결의를 다지고, 말을 부드럽지만 속에서는 칼을 간다.
이건 자연스럽다. 스포츠에 우정을 이유로 희생과 양보가 남용된다면 스포츠정신을 모욕하는 행위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 최선을 다하는 데 스포츠의 마력이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유소연과 서희경이 같은 조에 편성된 것부터 불행이었다. 친구이면서 경쟁관계인 두 선수가 한 조에 편성되었으니 마음 편한 플레이를 펼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절친’이란 소문이 무색하게 둘은 너무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적대감에 빠지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플레이하면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코 어렵지 않은 퍼팅 미스와 번번이 홀을 지나지 못하는 짧은 퍼팅들은 두 선수의 마음이 얼마나 편치 못하고 경직되어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골프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금언을 수없이 들었겠지만 우승을 눈앞에 두고 긴장한 탓인지 그들은 결코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이지 않고 상대방 절친과 쟁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기량을 갖춘 두 선수가 앞으로 LPGA투어에서 승수를 쌓아가려면 특정선수나 동반 선수를 적으로 돌려 싸우는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 
언제 상대가 내 플레이를 방해했나? 단지 내가 실수를 범하고 자멸했을 따름이 아닌가.

‘전장에 나가 혼자 수천의 적과 싸워 이긴다 해도 하나의 자기를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용감한 전사 중 최고이니라.’ (『법구경』 중에서)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성을 정복한 사람보다 낫다.’ (『잠언』 11장 22절)
‘신은 인내심이 강한 자와 함께 계신다.’(『코란』중에서)
동서양의 경전들이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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