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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새로운 문화 '콜로세움 골프'에서 살아남기…PGA 피닉스오픈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상) 안병훈 프로가 2020년 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 3라운드 18번홀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하)PGA 투어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 스코츠데일 골프코스의 16번홀 전경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지구촌에 수많은 골프대회가 열리지만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도시 피닉스 인근 스코츠데일의 TPC 스코츠데일(파71) 코스에서 열리는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M) 피닉스오픈은 유별나다. 

아리조나주는 선인장과 카우보이를 연상시킨다.

남쪽으로 멕시코 국경과 닿아있고 서쪽으로 캘리포니아주, 북서쪽으로 네바다주, 북쪽으로 유타주, 동쪽으로 뉴멕시코주와 접하고 있다. 
네바다의 모하비사막만큼 혹독한 사막지역이 있는가 하면 점점이 흩어진 초원 위에 험악한 바위산들이 솟아있다. 국내 한 자동차 메이커의 SUV 투산(Tucson)은 이곳 아리조나주 남쪽의 국경도시 이름에서 따왔다. 

이런 가혹한 지역에 세워진 인공도시 피닉스(Phoenix)는 불사조란 이름에 걸맞다. 

피닉스 외곽의 소도시 스코츠데일이 품은 TPC 스코츠데일 골프코스는 불사조의 둥지다. 동쪽으로는 맥도웰마운틴, 서쪽에는 피닉스마운틴이 이 둥지를 지켜준다.

불사조가 둥지를 튼 골프코스에서 열리는 피닉스오픈은 전통적인 골프문화를 거부한다.

1932년에 창설되었으니 역사가 88년이나 된다. ‘선더버드 재단’이란 지역 시민단체가 지역 활성화와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골프대회를 만들었다. 선더버드(Thunderbird, 천둥새)라는 아메리카 토착민의 전설에 나오는 새 이름을 재단 이름으로 차용한 것이나 대회 이름에 역시 상상의 새인 불사조를 붙인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불사조의 둥지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여서인지 다른 골프대회와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정숙한 분위기에서 에티켓을 지키며 품위 있게 경기를 관람하는 기존 골프대회와는 완전 딴판이다. 음주와 가무가 허용되고 집단 응원이나 야유도 통한다. 들판에서 벌이는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할 만큼 광란에 가까운 열기가 지배한다. 

특히 16번 홀(파3)과 17번 홀(파4), 18번 홀(파4)로 이어지는 코스엔 4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스타디움이 에워싸 선수와 갤러리가 한 덩어리가 된다. 
로마시대의 콜로세움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로마시대에는 경기장에 노예검투사나 맹수들이 죽음의 결투를 벌였고 지금은 골프선수들이 긴 막대기로 작은 볼을 치며 경쟁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환호하고 야유하고 고함치는 관람석 분위기는 똑같다. 

이런 피닉스오픈의 캐릭터는 선더버드 재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갤러리를 불러모을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골프문화의 금기를 깨트려 나간 결과다. 

같은 기간 미국의 최대 스포츠제전인 미식축구의 챔피언을 가리는 슈퍼볼 대회가 열리는데도 피닉스오픈에 60~70여만명의 갤러리가 운집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골프대회에서 맛볼 수 없는 관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갤러리들이 자유롭고 편안하다. 다른 대회에선 선수가 경기 중엔 침묵하고 가만 있어야 하는데 여기선 한 손에 맥주 캔을 들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야유도 보내고 고함을 치고 기타도 친다. 80~90데시벨에 육박하는 온갖 소음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선수들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이 코스를 지날 때는 환호하는 갤러리들을 위해 모자나 장갑, 볼 등을 선물하는가 하면 전통적인 복장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팀 선수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진 옷을 입어 갤러리들과 교감하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최근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이름이나 별병인 ‘블랙맘바’를 클럽에 새기거나 그가 뛰었던 LA 레이커스의 유니폼을 입는 선수도 많았다.

한편 선수의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과제다. 

완전한 정숙 상태에서 경기하는 습관이 밴 선수는 피닉스 오픈은 고통스런 코스가 될 것이고 구도자처럼 라운드하는 선수 역시 사탄과 싸워야 한다. 
기량과 별개의 문제가 승부를 가를 수 있다는 얘기다. 갤러리와 호흡을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골프해방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선 피닉스 오픈은 많은 선수들에게 자신을 담금질 할 수 있는 용광로인 셈이다.

선(禪)에서 소는 진리에 비유된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는 심우(尋牛)의 과정은 진리를 찾아 나서는 구도의 길이다. 심우도(尋牛圖)는 바로 이 구도의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 8단계 혹은 10단계로 나뉜다. 
어느 경우든 마지막은 일상 속으로 돌아와 보통사람들과 어울리며 진리를 전하는 단계다. 일상의 삶이 곧 깨달음인 단계로 입전수수(入纏垂手)라 일컫는다. 

피닉스오픈은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골프에 몰입하고 동반자를 배려하며 골프의 오솔길을 소요하는 그런 경지를 요구하는 코스인 것 같다.
  
갤러리를 숨 막히게 하지 않는 분위기, 갤러리와 선수가 함께 경기 분위기를 즐기는 새로운 골프문화가 사람을 모으고 대회의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앞으로 전통과 품위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대회들이 어떻게 갤러리를 끌어모아 지구촌 축제로 발전시킬 것인가 길을 보여준다.

최근 뉴욕에 있는 월드골프그룹(WGG)이 오는 2022년부터 컷오프 없이 PGA투어보다 상금을 1.5배나 더 주는 프리미어골프리그(PGL)를 시작한다고 발표, 영토를 지켜야 할 과제가 생긴 PGA투어로선 피닉스오픈 같은 ‘축제의 골프’에서 답을 찾아야 할 입장이다. 

한국 골프 팬으로선 안병훈(29), 임성재(22), 강성훈(32), 노장의 투혼을 발휘하는 최경주(50) 등이 용광로처럼 뜨거운 골프해방구에서 어떤 모습으로 장갑을 벗을지 궁금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20-02-02 08:5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