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카드.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물라 나스루딘이 죽어서 지옥으로 갔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탄을 만났다. 나스루딘은 그를 환영하는 사탄에게 말했다.
“오 친구여, 나는 이곳 천국에 오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러자 사탄이 말했다.
“나스루딘이여, 그대는 잘못 알고 있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
다시 나스루딘이 말했다.
“그것은 당신 생각이다. 나는 인도에서 왔고 내게는 이곳이 천국처럼 보인다.”

(위 이야기는 오쇼 라즈니쉬의 유머모음집 「지혜로운 자의 농담」중에서. 물라 나스루딘은 7세기경 이슬람문명권에서 생성되기 시작한 우화의 주인공으로, 성자 이야기꾼 장사꾼 농사꾼 뱃사공 미치광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해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 따위를 깨뜨리고 삶의 통찰과 지혜를 알려준다.)

즉, 천국과 지옥이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한다.


‘다타호신(多打好身) 소타호심(小打好心)
다타오타(多打好他) 소타오낭(小打好囊)’

중국 베이징 근교의 한 골프장에 새겨진 글이라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이 글의 뜻은 ‘많이 치면 몸에 좋고 적게 치면 마음에 좋다. 많이 치면 남에게 좋고, 적게 치면 내 주머니에 좋다’쯤 될 것이다. 골프 핸디캡은 무조건 낮아야 좋다는 고정관념에 불만이 많은 상당수 주말골퍼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글이지만 골프의 핵심을 기막히게 꿰뚫고 있다.

상반되는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골프가 즐거운 놀이도 될 수 있고 고통스런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핸디캡은 골프의 즐거움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핸디캡이 낮으면 골프의 재미가 더하고, 핸디캡이 높으면 그 재미가 줄어드는가.

많은 골프전문가들이 핸디캡과 골프 재미와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들의 노력은 핸디캡과 골프의 재미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핸디캡이 골프의 즐거움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없음은 수많은 애버리지 골퍼들이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다.

같은 하이 핸디캐퍼라도 한두 번의 호쾌한 드라이버 샷에 흡족해 하거나 아예 스코어에 신경쓰지 않고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담소하는 것 자체를 은총으로 여기는 골퍼가 있는가 하면, 평소 연습도 하지 않으면서 만족한 샷이 나오지 않는다고 시종 불만에 싸여 라운드 하는 골퍼도 없지 않다.

싱글골퍼 중에도 자신의 최고기록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코어에 별 신경을 안 쓰고 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짜릿한 즐거움을 얻는 골퍼도 있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 많은 명작을 남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40대가 넘어 골프의 재미에 빠졌다. 그는 스코어를 생각하면 골프의 묘미를 해친다고 해서 아예 스코어카드 없이 라운드 했다고 한다. 핸디캡에서 벗어나 골프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겠다는 자세다.

골프에서 핸디캡은 평균적으로 자신이 낼 수 있는 스코어를 말한다. 핸디캡을 공식적으로 산정하는 방법은 의외로 까다롭지만 주말골퍼들은 대개 다섯 번 정도 라운드 해서 가장 좋은 스코어를 자신의 핸디캡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마저도 내기가 어떻게 걸렸느냐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주말골퍼들이 알고 있는 자신의 핸디캡은 과연 얼마나 근거 있는 것일까. 특히 주말골퍼들이 밝히는 핸디캡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최근 주말골퍼들의 핸디캡의 적나라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라운드를 경험했다.

나는 물론 싱글을 자처했고 동반자 3명 중 2명은 80대 초반, 1명은 90대 전후를 자진 신고했다.

첫 홀 네 사람이 다양한 스코어를 냈지만 어김없이 ‘일파만파’ ‘무파만파’의 룰에 따라 ‘올파’로 기록되었다. 심각한 내기가 걸리거나 한두 사람이라도 스코어 그대로 적기를 주장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친선경기엔 이 룰이 적용된다.

몇 사람이 초반에 ‘쪼로’를 내거나 OB나 해저드로 볼을 날리자 ‘그냥 다시 치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34도를 웃도는 폭염 탓도 있겠지만 몇 홀 지나지 않아 캐디에게 더블보기 이상은 기록하지 않도록 하는 지침이 주어졌다. 더위가 심해진 후반 들어서는 아예 보기를 상한으로 정하기까지 했다. 가끔 트리플보기 이상은 배제하는 경우를 경험하기 했으나 보기를 상한선으로 삼는 경우는 처음이다.

컨시드를 주는 오케이 거리도 후했다. 처음엔 퍼터 손잡이까지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다 드라이버 길이 안이면 오케이로 선언했다. 짧은 거리의 퍼팅을 연습하려 해도 볼을 집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캐디는 고객의 이런 주문에 쾌재를 부른다. 심각한 내기가 없으니 실랑이도 적고 화기애애한 명랑골프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진행이 순조롭기 때문이다.

라운드를 끝내고 스코어카드를 보니 놀라웠다. 이건 완전한 싱글골퍼들의 스코어였다. 3명이 70대를 기록했고 1명만 80대 초반이었으나 역시 싱글기록이었다. 그런데도 80대 초반을 기록한 동반자는 70대가 못되었다고 불평이다.

내 눈으로는 잘 쳐야 한 사람은 80~90타, 나머지 두 사람은 90~100타였는데 모두 싱글이라니 황당했다. 나만 엄격하고 인색할 필요 없으니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긴장감이나 집중도가 떨어져 골프의 묘미는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이날 경험한 라운드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긴 했으나 상당수 주말골퍼들이 이런 관행에 익숙해져 자신의 실제 핸디캡을 잘못 알고 있는 게 현실이다.
터무니없이 엉터리인 척도로 나온 핸디캡을 머리에 담고는 이를 기준으로 ‘골프를 잘 쳤다’ ‘못 쳤다’를 평가하니 골프의 참맛을 언제 알 수 있겠는가. 자신의 핸디캡만 정확히 알아도 그만큼 골프로 인한 불만이나 좌절을 줄일 수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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