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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흔히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할 때 무상(無常)이란 말을 쓰지만 불교에서의 무상의 의미는 진리 그 자체다. 붓다도 “오직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라고 설했다. 연기법과 함께 불교의 핵심 테마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는 이 무상성이 아무도 깰 수 없는 불변의 진리임을 납득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무상을 체험하기란 쉽지 않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자신의 신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잠시 인생의 무상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무상은 남의 일이라는 착각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

구도자들도 무상의 진리를 몸으로 체득해 실제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지난한데 보통 사람들이 이런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이해할 만은 하다.

그러나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은 천지 차이다. 모른다는 것은 하찮은 실수나 게으름이 아니라 무명(無明)이다. 반대로 안다는 것은 무명과 광명을 구분할 줄 알고 현명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귀중한 지혜의 싹이다.

세속의 도락이라 할 골프에서 무상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얻고 있다면 쉽게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골프에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물론 골프를 10년, 20년 쳐 온 사람들도 골프가 안고 있는 철학적 깊이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나는 골프에서 구도의 길을 발견했고 골프의 밀림이 펼쳐 보이는 그 길에서 무궁무진한 삶의 지혜를 얻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이상하게 생긴 열서너 개의 도구로, 잔디가 깔린 들판에서, 직경 4.3cm의 볼을 쳐서, 제각각의 거리에 있는 직경 108mm의 작은 구멍에, 얼마나 적은 타수로 집어넣는가를 경쟁하는 골프는 엄격한 의미에서 정통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다.
전쟁 수행을 위한 기술 연마와 체력 단련의 필요성으로 태동한 격투기나 육상, 수렵시대의 사냥에서 그 기원을 엿볼 수 있는 구기 종목들에 비하면 운동의 효과나 양, 역동성, 자극적 재미 등에서 골프는 순위가 한참 뒤로 밀린다.

초원에서 골프를 하는 사람들의 운동이란 산책하듯 걸으며 골프채를 대략 100여 차례 안팎 휘두르는 동작을 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나머지 시간은 동반자와 담소를 나누거나 주변 자연을 감상하는 일, 그리고 볼이 놓인 위치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가 방법과 경로를 모색하는 데 소비한다.

언뜻 단조롭고 무미해 보이는 골프가 현대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쉽게 정복될 것 같으면서도 결코 정복되지 않는 골프의 속성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정복되지 않는 골프 속성의 대표적인 것이 무상성(無常性)이다. 땀과 열정을 쏟아 연습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똑같은 샷(shot)은 되풀이할 수 없다. 아무리 완벽한 기량을 쌓았다 해도 그때그때의 상황이 다르고 자신의 상태가 다르고 동반자가 다르다. 지금 이 순간 날리는 샷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샷들이 모여 다음 샷을 잉태하고 전체 라운드가 결정된다. 지금 여기에서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연기법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다.

또 다른 골프의 속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대결 구도’다.
스포츠란 본질적으로 대결의 게임, 적대의 게임이다. 대결에는 반드시 승패의 판가름이 난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상대를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데, 상대방을 쓰러뜨려야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이 대결 구도에서 모든 갈등과 마찰이 태어난다.
그런데 3~4명이 한 조가 되어 펼치는 골프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게임을 펼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게임 상대는 동반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라운드가 끝난 뒤 스코어로 승패를 가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의 대전 기록을 비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골프를 다른 스포츠와 같이 대결 구도의 스포츠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한번 골프채를 잡으면 눈을 감을 때까지 놓을 수 없게 하는 마력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골프의 진수에 다다르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골프를 동반자들과의 쟁투(爭鬪)로 인식하는 한 영원히 골프의 진수에 접근할 수 없다. 상대를 이겨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순간 머릿속은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배당한다. 게임이 뜻대로 되든 되지 않든 상관없이 투지와 낙담, 자만과 좌절, 더 큰 욕심, 그리고 분노와 치욕 등의 온갖 감정들이 활활 타올라 평소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동시에 즐거워야 할 초원의 라운드가 실망과 고통, 분노로 얼룩진 스포츠가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철저하게 분쟁을 해소하는 석쟁(釋爭)의 스포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동반자는 물론 자연조건들, 골프 도구들, 많은 장애물들과의 대립 대결 관계를 풀고 소금이 물에 녹아 하나가 되듯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조화를 추구할 때 골프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분쟁의 불씨를 제거하는가’이다. 골프를 함께하면서 틈만 나면 동반자들과 자신 사이에 형성되는 대결 구도를 해소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말로는 “스코어를 초월해 즐거운 라운드를 하자.”고 해놓고도 마음속으로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면 더 큰 갈등과 혼란에 빠질 뿐이다.

나는 동서양의 많은 경전과 구도서에서 그 길을 찾아냈다. 좋은 플레이를 위해선 갈등과 마찰에서 벗어나 가능한 한 순도 높은 ‘마음비움’을 유지해야 하는데 수많은 경전과 선 수행서를 접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비우는 방법을 체득하게 됐다.
동시에 함께 운동하는 동반자들이 어떻게 하면 최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궁리할 때 대결 구도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도 나름대로 깨달았다.

골프가 안고 있는 무상성(無常性), 동시에 무상성을 거부하는 초월성(超越性)을 깨달아가면서 나름대로 골프에서 면벽수행 이상의 마음 수행의 기쁨을 얻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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