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여자오픈과 숙명적 라이벌

서희경은 샴페인을 먼저 터트린 셈이 되었다.

올해의 절반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 동안 LPGA 우승 소식에 목말랐던 일부 언론사들은 한참 진행중인 US여자오픈 경기에서 그녀의 우승을 기정 사실화했다. 설령 그녀가 우승을 하지 못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누가 되든 한국 선수가 우승할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몰로 경기가 중단되어 몇 홀을 남겨둔 채 다음 날로 경기를 미룬 선수 중 서희경을 위협할 수 있는 선수가 '유소연'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묘한 느낌을 받았다. 질기고도 숙명적인 인연이랄까?

그리고 다시 시작된 잔여 라운드를 뜬 눈으로 지켜보면서, 지난 2~3년 동안 서희경과 유소연이 국내 경기에서 벌였던 격전들이 떠올랐다. 신지애를 비롯한 스타들이 LPGA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 국내 골프 경기는 이 두 사람의 천하였다. 외나무다리에서 라이벌을 만나듯, 연장전에서 그녀들은 자주 만났다. 그만큼 이들의 실력 또한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는 좀 다른 양상이었다. 2008년에 6승, 2009년에 5승을 한 서희경이었지만, 2010년에는 LPGA투어 기아 클래식을 제외하고는 우승이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인정한 슬럼프였다. LPGA 데뷔를 앞두고 한국, 미국, 일본을 오가는 바쁜 일정 때문에 체력은 떨어졌으며, 퍼팅과 쇼트게임은 감을 잃고 난조를 보였던 것이다.

반면 2008년에 KLPGA 투어에 화려하게 데뷔한 유소연은 2009년 4승을 거두며 서희경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올라섰다. 하지만 그 해에 서희경에게 다승왕과 상금왕을 놓친 것이 항상 큰 아쉬움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2010년 스무 살의 유소연은 한층 강해져 있었다. 다만 필자의 예상보다 일찍 그녀를 LPGA 무대에서 보게 되었다. 서희경의 LPGA 진출이 그녀에게 자극제가 된 것은 아닐까?

이번 US여자오픈에서 서희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발목을 잡던 퍼트가 그녀를 우승까지 노리게 한 무기가 되었다. 역사상 전장이 가장 긴 골프코스라는 것을 기분 좋게 비웃기라도 하듯이, 드라이버 평균거리는 49위(238야드)에 불과했지만 최종 순위는 1위에 랭크되었다. 그녀의 퍼팅 감은 세계 최고였다.

세계적인 무대라서 떨리기도 했을 텐데, 유소연도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이 돋보였다. 그런 만큼 실수가 적었다. 17번 홀에서 아깝게 보기를 범해 우승을 내줘야 했던 서희경과는 달리, 16번홀부터 시작된 연장 세 홀에서 2언더파를 쳤다. 그녀가 항상 '넘어야 할 산'으로 생각하는 서희경을 따돌리고 결국 LPGA 투어 정상에 올랐다.

어떤 분야에서도 그러하지만, 선의의 라이벌 의식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서희경과 유소연이 LPGA에서 이처럼 뛰어난 기량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라이벌이 있어서가 아닐까? 앞으로 청야니를 위협할 한국의 새로운 대표 주자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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