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A는 학창시절은 물론 사회에 나와서까지 항상 B를 뒤쫓는 꼴이 되었다. 한 동네에 살면서 중고등학교 6년간을 함께 다닌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쫓고 쫓기는 긴장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B는 공부도 잘 한데다 만능스포츠맨이어서 언제나 무리의 리더가 되어 능력을 발휘했다.

반면 내성적 성격의 A는 공부는 열심히 했으나 한번도 B를 앞선 적이 없었다. 특히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체육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종횡무진 활약하는 B를 부럽게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A는 능력 있고 사교성도 좋은 B를 좋아하면서도 항상 앞서 있는 친구를 뒤쫓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었다.
전공이 달라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 둘 사이의 경쟁관계는 수그러드는 듯했다. 둘 다 재벌급 기업에 취직을 했으나 일하는 분야가 달라 서로 맞닥뜨릴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A는 뇌리에서 B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자신보다 앞서 승진가도를 달리는 B를 일종의 질투와 패배감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B를 고교 졸업 후 거의 30년 만에 골프장에서 조우했다. 동문회에서 주최한 골프대회에 참가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조로 편성된 것이었다. 골프장에 도착해 조 편성표를 보는 순간 A의 심정은 착잡했다. 죽마고우와 함께 라운드하게 되었다는 반가움과 기쁨은 잠시, ‘골프장에서까지 이 친구의 승리를 지켜보아야 하는가’라는 혼잣말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첫 홀 티샷을 기다리는 동안 B는 변함없이 활달한 성격으로 동문들과 어울리며 골프대회를 맘껏 즐기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B와 어울려 함께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A는 '30년 전의 학창시절이 재연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이런 심리상태가 게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티샷 순서가 정해져 모두들 티샷을 했다. B의 티샷은 동반자들로부터 ‘굿샷’이란 외침을 들었지만 그다지 좋은 샷은 아니었다. 최대한 긴장을 풀고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선 A의 티샷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날아갔다. 
서로들 보기플레이를 한다고 엄살을 떨어졌지만 A가 보기엔 자신을 포함해 3명은 싱글에 가깝고 B는 좀 느슨한 보기플레이로 보였다. B의 스윙은 교과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집중도도 떨어지는 듯했다. 첫눈에 상대가 안 되었다.

첫 홀이 지나고 나자 A는 야릇한 흥분에 싸이기 시작했다. ‘오늘 이 친구를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A의 골프는 쉬 무너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초보시절에는 경계의 대상이 못되었지만 구력 3년이 지나면서 늦깎이 골프신동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운동에 소질이 없다지만 골프만은 제대로 해보자’는 그의 각오와 각고의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서너 홀이 지나면서 예견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날의 승부는 싱겁게 판가름 났다. A는 긴장 속에서도 평소의 실력을 발휘해 자신도 놀랄 70대 중반의 싱글 스코어를 기록했고 B는 전형적인 보기플레이어의 느슨한 게임으로 80대 후반에 겨우 턱걸이했다. 동반자들과 악수를 나눈 뒤 마지막 홀을 벗어나는 순간이 이렇게 개운한 적이 없었던 듯했다. A는 입가에 번지는 통쾌한 승리의 미소를 참느라 무진 애를 썼다.

다음날 B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주말에 같이 라운드 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좋다고 하자 B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진작 널 만나야 했었는데. 난 골프를 잘 못 치지만 볼 줄은 알거든. 네 골프실력 대단하더라. 앞으로 자주 만나 지도해주면 좋겠어.”하고 말했다.
휴대전화의 통화 종료음을 들으면서 A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코 내가 친구를 이긴 것이 아니구나. 친구는 골프를 즐겼는데 나는 친구와 싸움을 한 꼴이 아니냐’ A는 다시 한 번 B에 대한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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