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의 생육습성을 이해하면 샷이 달라진다. 그동안 디보트를 만들고 싶던 골프라면 잔디의 종류부터 파악하도록 하자.

잔디밭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잔디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이는 생육습성에서 오는 차이 때문이다. 잔디는 줄기가 땅을 기는 게 있는가 하면, 땅속으로 자라는 것도 있고, 포기로 자라는 것도 있다. 이러한 습성은 잔디밭 조성에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플레이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즉 잔디의 생육습성을 이해하면 관리,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잔디의 생육습성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땅위를 기는 잔디를 포복경이라고 하는데 크리핑벤트그래스, 한국잔디, 버뮤다그래스 등이 대표적이다. 땅속으로 줄기를 뻗어 자라는 것은 지하경으로 켄터키블루그래스 등이 있다. 포기생장을 하는 잔디는 퍼레니얼라이그래스, 페스큐 등이다.

잔디의 생육습성은 아이언샷에 큰 영향을 미친다. 벤트그래스 페어웨이에서 아이언샷을 하면 손바닥 크기로 디보트가 발생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줄기가 땅위에 그물처럼 형성돼 카페트처럼 뗏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켄터키블루그래스는 디보트가 발생하긴 하지만 대부분 부스러지거나 크기가 작다. 줄기가 땅속에 있어 잔디 윗부분 줄기만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디보트가 생겨 떨어져 나간 잔디를 가져다가 메우는 것은 골프 에티켓이다. 다음 플레이어를 위한 배려지만 디보트를 메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디보트에 잔디를 붙여주면 다시 활착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잔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벤트그래스는 새싹이나 뿌리가 생성되는 생장점(관부)이 줄기에 포함돼 디보트에 붙여 잘 밟아 주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난다. 하지만 켄터키블루그래스와 같은 지하경 잔디는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땅위로 기는 잔디와 땅속으로 파고드는 잔디가 서로 경합을 한다면 어떤 잔디가 우위를 점할까? ‘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처럼 위에서 노는 잔디가 밑에서 노는 잔디를 이긴다. 광합성 경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벤트그래스와 켄터키블루그래스가 혼합됐을 경우 벤트그래스는 줄기가 땅위에서 자라기 때문에 지상부에 잔디 잎을 많이 형성, 켄터키블루그래스를 덮어 햇볕 쟁탈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켄터키블루그래스도 유리한 경우가 있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켄터키블루그래스가 생육이 좋다.

벤트그래스는 지상부에 줄기가 있기 때문에 건조하지만 켄터키블루그래스는 땅속에 줄기를 묻고 있어 상대적으로 건조스트레스에 강하다. 뿐만 아니라 답압에 대한 내성도 강하다. 생장점이 붙어 있는 줄기가 땅속에 존재해 많이 밟아 지상부 줄기가 망가져도 땅속에 보호된 생장점에서 또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채워준다.

한편 잔디의 생육습성에 따라 샷감도 다르다. 포복생장형인 버뮤다그래스의 경우 예고를 높여 키우면 채가 감겨 잘 빠지지 않는다. 특히 세미러프지역처럼 예고를 30~50mm 정도로 높이면 포복형 줄기가 지상부에 형성돼 채가 잘 빠지지 않는 것. 포기번식을 하는 페스큐는 주로 러프용으로 사용한다. 러프에 머리카락처럼 형성된 잔디가 파인페스큐다. 이 잔디는 줄기로 번식하는 대신 포기로 번식해 뿌리를 깊게 내리기 때문에 강한 잔디 포기에 채가 빠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 풀스윙을 하는 것 보다는 짧게 찍어서 탈출하는 것이 요령이다.


심규열(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전문위원
한국잔디학회 회장
경상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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