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잔디에서 삶을 배운다.

잔디는 우리 삶 속에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 온다. 김소월의 ‘금잔디’는 가신님에 대한 그리움을, 조영남의 ‘고향의 푸른 잔디’는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의 추억을 담고 있다. 영국의 시인 프란치스 베이컨은 잔디밭 한가운데 가로수 길이 있고, 길 양 옆에 그늘진 산책로가 있는 정원을 원했다고 한다. 감성적인 시인에게도 잔디는 심미적으로 마음에 안식과 감성을 일깨우는 존재였던 것 같다.

우리는 죽어서도 잔디와 함께 한다. 잘 가꾸어진 잔디 이불을 덮고 영혼은 잠들고, 자손들은 조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산소의 잔디를 정성껏 손질하고 가꾼다. 이처럼 잔디는 우리 삶 속 깊숙이 들어와 함께 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에 대해 간과하는 듯하다. 잔디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그 생태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나는 잔디를 예찬한다.

잔디라는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잔디 씨앗 모으기 숙제였던 것 같다. 뒷동산에서 친구들과 잔디 씨앗을 훑어 모으고, 볏짚으로 썰매를 타던 곳이 바로 잔디밭이었다. 그 추억의 잔디밭이 이제는 직장이 되었으니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먹고살기에 급급해 농업에 모든 연구와 지원이 집중됐다. 지천에 깔려있는 잔디가 오늘날처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인간의 생활환경에 다양하게 활용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25년 전, 필자가 잔디 연구를 시작할 때만해도 주위에서 “잔디도 연구할게 있느냐”는 등 농담 섞인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길수록 잔디는 우리의 생활공간 속에서 활용도가 높아진다. 선진국의 경우 잔디는 생활공간 구성에 필수 요소다. 즉 잔디는 우리 삶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잔디를 연구하고 잔디와 함께 하면서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입장에서 잔디를 바라봤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잔디의 무궁무진한 내공, 즉 공익성과 친환경성, 그리고 꿋꿋한 생명력으로부터 많은 깨달음을 느끼게 된다. 따뜻한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싹이 돋아나 푸르름을 만들고, 여름, 가을이 지나면서 녹색의 멋진 골프코스라는 작품을 연출한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겨울이면 모든 영화로움을 다 내려놓고 누렇게 겨울잠에 들어간다. 그리고 한파 속에 꽁꽁 얼어붙은 잔디밭은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한두 달 후면 혹독한 추위에서 살아남아 어김없이 멋진 초록을 우리에게 선물하게 될 것이다.

잔디는 어떤 식물보다 자연의 섭리에 잘 순응한다. 급변하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쉼 없는 경쟁구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해를 시작 하며 잔디의 변화에 순응하는 적응력, 그리고 혹독한 한파에 잠시 쉬어가는 비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된다. 쉼과 높낮이가 없는 리듬은 음악적 아름다움을 만들 수 없다. 적당한 쉼과 다양한 변화의 리듬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 우리도 삶의 열정적인 활동과 더불어 때로는 적당한 쉼을 즐기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심규열(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월드컵조직위원회 잔디전문위원
한국잔디학회 회장
경상대학교 겸임교수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