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노년기 우울증은 기억력 저하를 야기할 수도 있다.

김연희(현재 마인드스캔 클리닉)/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경정신과 전문의, 강남하트스캔의원 마인드스캔 클리닉
60대의 노년 여성이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며 찾아왔다. 젊을 때는 다른 사람 전화번호를 줄줄 꿰고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10년 전부터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예전만 못하다고 느꼈다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3개월 전부터 사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아지고 부쩍 더한 것 같아서 치매를 걱정하고 있었다. 기억력 검사 결과 환자는 평균 정도의 기억력으로 연령과 교육 수준 대비 정상 수준. 객관적 검사와 주관적 기억력에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상담해보니 그 여성은 남들에게 말 못할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녀는 자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을 통해 채우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과외를 아무리 시켜도 공부를 하지 않던 큰아들은 변변치 못한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에게 사업 자금을 대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던 작은 아들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욕심에 점수가 모자라자 대입을 미루고 군대에 다녀왔는데 비자 문제로 출국을 못하고 하릴없이 놀고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이 마음으로 앓기만 하던 여성은 한달 사이에 10kg이나 살이 빠지고 좋아하던 운동도 마다하고 집에만 있게 된 것이다.

우울증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과서적으로는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식욕저하, 불면, 즐거움과 흥미의 감소, 의욕저하, 만성피로감 등이 있을 때 주요 우울증 진단을 내린다. 그러나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첫 호소는 우울증 진단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노인 환자의 경우는 더 그러하다. 노인 환자들은 우울한 감정의 호소가 적고 두통, 소화불량, 어깨 결림, 요통, 손발 저림, 어지럼증 등 신체증상의 호소가 더 많다. 이 환자처럼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등 인지기능의 이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내과적, 신경과적검사, 기억력, 치매관련 검사를 다 해봐도 별 이상은 없다. 결국 심리검사를 동반한 스트레스 검사와 주의 깊은 면담을 통해 내려지는 진단은 만성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노년기 우울증이다. 이렇게 우울증이 전형적이지 않은 경우를 가면 우울증이라고 하며 노년기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 기억력 저하가 심한 경우 ‘가성 치매’라고도 한다.

노년기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경우 가벼운 기억력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인 경우 약 40%가 치매 진단에 부합될 정도로 흔하게 기억력 저하가 나타난다. 그런데 추적관찰을 해보면 이런 환자들 중 매년 9~22%는 영구적인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노인 인구에서 치매가 발생하는 비율보다 2.5~6배 정도 높은 것이다.

노년기 우울증은 치매의 위험요인이므로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노화로 인해 자연적으로 기억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기억력 감퇴의 범위를 벗어나 급격하게 변화가 있다거나 주관적으로 같은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심하다고 느낀다면 정서적 스트레스의 영향은 아닌지, 적절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닌지 검사를 해보자. 적극적인 스트레스 관리도 건강하게 늙어가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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