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대디? 가족을 위해선 뭐든지 가능하다”

태릉 선수촌에서 안재형 탁구 코치(왼쪽)와 정동철 편집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골프백을 멨을 때의 안재형 코치.
어릴 때의 안병훈 선수
지난 5월25일 저 멀리 영국 웬트워스 골프장에서 또 1명의 한국 선수가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그것도 4대 메이저 대회를 제외하고 유러피언 투어에서 가장 큰 대회로 꼽히는 BMW PGA챔피언십 우승이었다. 주인공은 안병훈(24). 3년간의 2부 투어 생활 끝에 첫 정규 투어에 올라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쾌거였다 . 안병훈은 6년 전인 2009년 US아마추어골프챔피언십 우승으로 많은 기대를 모은바 있다. 그러나 그가 더 많은 주목을 받았던 건 무엇보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1998년 서울올림픽 탁구 메달리스트이자 한·중 핑퐁 커플로 많은 화제를 낳았던 안재형과 중국의 자오즈민의 외아들이기 때문.

사실 안재형은 아들 안병훈을 위해 오랫동안 골프백을 멘 대표적인 골프대디(Golf Dady)다. 아들의 골프 인생을 위해 미국까지 건너가 8년간 함께했고, 또 끊임 없이 ‘인내하라’고 가르쳤다. 그런 그가 이제 다시 탁구채를 집었다. 탁구 국가대표 코치로 돌아온 것. 태릉 선수촌에서 만난 과거의 탁구 스타 안재형, 아니 탁구 국가대표 코치 안재형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있었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들에게 탁구가 아닌 골프를 가르친 사연과 골프 뒷바라지를 자처한 이유, 2016년 리우올림픽에 아들과 동반 출전 가능성에 대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들의 첫 우승 축하한다. 갑자기 우승했는데 예상했었나.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안)병훈이는 올해 유러피언 투어 첫 시즌을 맞는 신인이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은 2부 투어에서 활동했다. 따라서 투어 카드만 유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전반기 흐름이 좋았고, 특히 우승한 BMW PGA챔피언십은 더더욱 그랬다. 2라운드가 끝나고 3라운드부터는 선두권에서 플레이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3라운드부터는 다른 대회와 달리 긴장이 안 되더라. 오히려 재미있었다. 어쨌든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일단 올해 목표를 생각보다 빨리 달성했으니 앞으로 남은 시즌을 보다 좋은 분위기에서 이어갈 것 같다.

플레이를 보니 장타뿐 아니라 배짱도 두둑하더라. 부모 중 누구를 닮은 것인가.
글쎄… 배짱으로 보자면 병훈이가 우리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우리는 그리 대담한 편이 아니다. 특히 나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둘 중 1명을 선택하라면 엄마 쪽을 좀 더 닮은 것 같다.


부모가 유명한, 그것도 세계적인 탁구 선수였다. 탁구가 아닌 골프를 시킨 이유가 있나.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운동 감각을 꼽을 수 있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들이 뛰어 놀거나 성격 등을 보면서 대충의 운동 능력을 판단하게 된다. 내 아이가 잘 뛰는지, 아니면 움직이는 걸 싫어하거나 둔한지 등등… 병훈이의 경우 어릴 때부터 먹는 것을 좋아하고 힘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하체가 두꺼웠고 몸도 비대했다. 뛰는 것만 봐도 민첩성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데 탁구는 매우 빨라야 하고 민첩성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병훈이는 탁구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골프는 탁구와 다르다. 민첩성보다는 강한 하체나 근력, 힘 등이 더 요구된다. 병훈이에게 탁구보다는 골프가 더 어울리는 이유다. 그러나 처음부터 선수 육성을 목적으로 가르친 건 아니다. 병훈이도 여느 선수들처럼 부모를 따라다니다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내가 취미로 골프에 한참 빠졌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연습장에 갈 때 한 번씩 데려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혼자 볼을 때리며 놀았고, 그렇게 골프를 알게 됐다. 내가 골프를 좋아했던 것도 있었지만, 또 배워두면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어차피 운동을 하게 된다면 오래 할 수 있는 종목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역시 골프를 선택하는 데 참고가 됐다. 단순히 골프 선수를 시키겠다고 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고 고민한 결과 병훈이에게 딱 맞는 종목이 골프라고 느낀 것이다.

지금도 골프를 하나. 아들과 같이 라운드하는 재미도 있겠다.
골프채를 손에서 놓은 지 대략 8년 정도됐다. 본격적으로 병훈이 뒷바라지를 한 뒤부터다. 전에는 보기플레이 수준이었는데, 병훈이 같이 장타를 치거나 공격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사실 병훈이와 골프하면 재미없다. 골프라는 운동이 친구들과 함께하며 얘기하는 맛으로 하는데 병훈이는 좀 무뚝뚝하다. 아들들이 대부분 그렇듯 부모와 애교석인 대화는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 병훈이도 마찬가지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단답형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아내는 골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몇 번 클럽을 휘두르는 수준이다. 그냥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웃음).

안병훈 선수가 왼손잡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그런데 골프는 오른손으로 한다. 어릴 때부터 오른손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잡은 골프채가 내 클럽이다. 그냥 내 클럽으로 연습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스윙하기 시작했다. 레슨 코치에게 물어보니 굳이 왼쪽으로 스윙하는 것보다 오른쪽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해서 그렇게 놔뒀다.

탁구라면 전문가겠지만, 탁구가 아닌 골프를 선택해서 어려운 점도 있었겠다.
골프는 탁구와는 전혀 다른 종목이다. 나 역시 운동 선수였지만 골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부모들과 같이 백지상태로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선수의 부모 입장에서 골프를 접하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선 탁구는 학교 체육에 속한다. 따라서 학교에 가면 탁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그러나 골프는 방과 후 운동이다. 다시 말해 수업이 끝나고 외부에서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고 연습해야 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연습하는 곳이 집 근처에 있지 않은 이상 멀리까지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시합을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 중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꾸준한 뒷바라지가 가능하다. 처음엔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다.

결국 미국까지 건너가 뒷바라지 했다.
병훈이의 경우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는데 국내 여건상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보다는 미국의 골프 환경이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미국으로 간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병훈이의 캐디를 맡았다. 비용 절감도 있었고,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 어찌됐든 가족과 함께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진심을 다해 도와줄 수 있다.


스타 운동 선수였는데 아들의 골프백을 메는 게 창피하지 않았나.
골프는 가족이 함께하지 않으면 상당히 힘든 운동 중 하나다.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개인 종목 중에서 더 개인적인 종목이 골프인 것이다. 골프 선수의 모든 가족들은 다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데리고 다니지 못하면 아내가 했고, 또 우리 아버지도 거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족이기에 희생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얼굴이 알려져 있다고 해서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건 없다. 주위에서는 안쓰럽다는 말까지 했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특별히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 자식을 위해 음식을 하고 청소나 운전, 골프백을 메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들이 더 걱정스러웠다. 골프가 결코 쉬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프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괴로웠다.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줬나.
인내하라고.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얘기해왔던 말이다.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할 수는 없으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했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꾸짖지 않았다. 잘했다고 다독였고, 최선을 다하라고 응원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감내하고, 또 참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대신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선 호되게 꾸짖었다. 예를 들면 예의나 매너 없는 행동 등 말이다.

지금 안병훈 선수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 보나.
장점은 타고난 체격이다. 골프하기에 체격은 탁월한 것 같다. 또한 긴장 속에서 떨지 않고 플레이를 잘한다.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타고났는지 배운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종류의 멘탈이 아주 좋다. 그러나 멘탈도 여러 가지가 있다. 병훈이의 단점도 멘탈이기 때문이다. 배짱은 좋지만 반대로 자기 욕심만큼 안 될 때 그걸 극복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승부욕인지는 몰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참지 못한다. 그래서 리듬이 깨지고 무너지더라. 어릴 때는 정말 심했다. 한 번은 연습 도중 화를 참지 못하고 클럽으로 골프백을 때렸는데 휘두른 클럽뿐 아니라 백 속에 있던 클럽까지 부러뜨린 적도 있다. 정말 힘이 좋은가 보다. 타이르고 혼내도 소용없었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주더라. 성장하면서 생각도 바뀌고, 그런 행동도 자연스럽게 고쳐졌다.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알게 되면서 실력도 향상된 것 같다.


솔직하게 병훈이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비록 다른 종목이지만 지도자로서 대충 보이지 않나.
글쎄… 탁구라면 대충 그림이 나오겠는데 골프는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어릴 때 조숙한 아이들이 골프를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은 한 번 더 생각하고 집중도 잘한다. 그런데 철없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집중을 못한다. 때문에 실수도 많다.

탁구와 골프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공통점은 멘탈이다. 개인 종목이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과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탁구는 복식 경기가 있지만 싱글 경기의 경우 누가 도와줄 수 없다. 잘되든 안 되든 탁구대에 서서 혼자 해결해야 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코스에 나가면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 차이점이라고 하면 종목이 완전히 다르니 기술적인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골프를 시키는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내가 누구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 특히 골프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정답이 없다. 골프를 하는 환경이나 성향, 또 선수의 성격 등 모든 것이 다르다. 그것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좋은데 내가 해왔던 방식이 옳은 건 아니다. 단지 ‘나는 이렇게 해왔다’ 정도일 뿐. 그걸 따라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병훈이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골프는 긴 운동이라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처음부터 길게 보고 절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가자’를 철칙으로 여겼다. 그래서 병훈이에게 지금까지도 참고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미국을 선택한 것이 도움됐다고 생각하나.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에 간다고 해서 잘되고, 안 간다고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훈이는 모든 상황이 잘 들어맞았다. 시기도 적당했고, 운도 좋았다. 더 어렸거나 늦었으면 적응하는 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도 적당한 시기에 잘 배운 것 같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정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잘 이어진 것 같다.

이제 다시 탁구 지도자로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운동을 시키는 아버지로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데 영향이 있나.
돌이켜보면 미국을 선택한 것이 도움됐다고 생각하나.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에 간다고 해서 잘되고, 안 간다고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병훈이는 모든 상황이 잘 들어맞았다. 시기도 적당했고, 운도 좋았다. 더 어렸거나 늦었으면 적응하는 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도 적당한 시기에 잘 배운 것 같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정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잘 이어진 것 같다.


이제 다시 탁구 지도자로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운동을 시키는 아버지로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데 영향이 있나.
지금 대표팀에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 아들과 비슷한 또래다. 그래서 아들을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정말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더욱 애착이 간다. 지금은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가장 잘했던 일을 내 자식들에게 물려준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탁구 종목은 예전 같이 유명한 선수가 없다. 실력도 떨어진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의 전 세대인 유승민, 주세혁, 오상은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메달권이 가능한 기대주들이 오늘도 훈련 중이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준비를 잘해야 될 것 같다.

지금 안병훈 선수의 올림픽 출전에 대해 긍정적이다. 동반 출전도 가능할 것 같은데.
골프는 아무도 모른다. 올림픽까지 1년이 넘게 남았고, 또 그 사이 수많은 대회가 있다. 골프는 매주 랭킹이 바뀌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다. 이미 병훈이보다 더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온 다른 선수들도 많지 않은가. 물론 나는 탁구 국가대표 코치로, 아들은 골프 국가대표로 동반 출전하는 것을 꿈꾼다.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가. 바람은 있지만 그러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아직 뭐라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


안재형 Profile
생년월일: 1965년 1월8일
학력: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과
경력: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동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복식 동메달
1992년~1997년 동아증권 코치
2000년 국가대표팀 청소년 상비군 감독
2001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대표팀 코치
2004년~2005년 한국체육대학교 탁구팀 감독
2006년 대한항공 여자탁구팀 감독
2015년 남자국가대표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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