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만 생각해 보면 금년에 나도 하나의 꿈이 실현됐다. 이븐파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 9월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과 함께 렉스필드에서 라운드하면서 마침내 꿈이
실현되었다.

윤 회장은 몇 가지 골프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분이다.
첫째, 룰은 철저히 지킨다. 골프는 스포츠다. 룰을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둘째, 멀리건이나 컨시드가 없다. 두 뼘 이상 거리는 반드시 퍼팅을 해야 한다.
셋째, 내기는 모든 동반자의 동의 후에 적은 금액으로만 하되 끝까지 계산하고
절대 돌려주지 않는다. 돈을 돌려주면 내기의 재미와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넷째, 행복하게 친다.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담소를 나누며 즐긴다.
가급적 업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날 나는 유난히 몸이 가벼웠고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첫 홀부터 버디성 파를
기록하며 연속 파 행진을 이어갔다. 오늘 특별히 무슨 기록을 하겠다는 각오 보다는
부담 없이 마음껏 클럽을 휘둘러보겠다는 생각이었다.

8번 홀은 그다지 어려운 홀이 아니다. 티 샷이 아주 잘 맞아서 페어웨이 한 가운데
떨어졌고 125야드의 세컨드 샷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파는 무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샷하기 직전 윤 회장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볼을 쳐야 하는데 그냥 웃으면서 내려친 것이 그린 좌측으로 빠졌다.
내리막 어프로치가 길었고 롱퍼팅이 실패하면서 그만 보기를 기록했다. 인코스에서는
파 행진이었고 동반자들은 모두 경악했다. 이날 아이언 샷도 좋았지만 퍼팅이 신 들린
듯이 꽂혔다. 마침내 마운틴 코스 마지막 홀에서 2.5m짜리 내리막 퍼팅을 남겨두게 됐다.

“나는 오케이 없는 거 알죠? 다른 사람 같으면 오케이 주겠지만 그렇게 하면 짝퉁
이븐파니까 의미가 없는 거죠.”
“당연하죠. 꼭 넣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퍼팅이 꼭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날은 5m 짜리 퍼팅도 거침없이 꽂혔기 때문이다. 내리막이지만 다소 강하게 친 볼은
그대로 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만세를 불렀고 동반자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라운드 후 동반자들이 물었다.
“지금까지 이븐파 몇 번 했어요?”
“두 번입니다.”
“기념패는 받았어요?”
“없습니다. 모두 짝퉁 이븐파거든요.”

실제로 레이크사이드와 리베라에서 이븐파를 했지만 멀리건이 있었고 널널한
컨시드가 몇 번 있어서 그 때는 이븐파 기념 술만 마시고 패는 안 만들었다.

“이븐파는 골퍼에게 꿈입니다. 나이 들면 홀인원이나 에이지슛은 가능하지만
이븐파는 어려운 거예요. 내가 축하하는 의미로 멋있는 트로피를 만들어 줄게요.
그리고 오케이 안 주는 내 이름이 있어야 진짜라니까!”

지금 우리 집에는 예술작품 처럼 생긴 이븐파 트로피가 빛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라운드 중에 드디어 실현된 꿈의 증표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언더파의 꿈, 홀인원의 꿈 그리고 언젠가 에이지 슛의 꿈이다.
당연히 짝퉁이 아니고 진품이어야 한다. 겨울이라 골프 치는 횟수가 줄었다. 이럴 때
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큰 꿈도 있고 작은 꿈도 있다. 악몽만 아니면 개꿈인들
어떠랴! 꿈이 뚜렷해야 성공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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