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한 선수가 골프 스윙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한 선수가 골프 스윙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산사에 가보면 대웅전 벽에 동자가 소를 타거나 끌고 숲에서 돌아오는 모습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심우도(尋牛圖)다.

현대의 고승인 혜암(慧庵, 1920~2001) 선사는 13세에 출가해 충남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에서 많은 수행승을 지도했다.

 

한번은 어떤 젊은 수좌가 혜암보다 나이 많은 혜월(慧月, 1861~1936) 선사를 찾아 물었다.

“소를 타고 찾는다는데 이게 무슨 도리입니까?”

혜월 선사가 “그따위 소리하며 다니지 마라.”고 잘라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혜암 선사가 수덕사의 최고 스승 자리인 조실(祖室)을 맡고 있는 만공(滿空, 1871~1940) 선사에게 물었다.

“혜월 스님이 젊은 수좌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잘 일러주신 것이옵니까?”

 

만공 선사가 말했다.

“그 늙은 놈이 그래 가지고 어떻게 학인의 눈을 열게 하겠느냐?”

 

그러자 혜암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럼 조실 스님께선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만공 선사가 말했다.

“그 젊은 수좌가 혜월에게 물은 것과 똑같이 내게 물어보아라.”

 

혜암 선사가 만공 선사에게 절을 세 번 하고 물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는데 이게 무슨 도리입니까?”

 

그러자 만공이 말했다.

“네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는데 찾아다니는 소는 그만두고 네가 탄 소나 이리 가져오너라.”

 

이 말을 들은 혜암 선사는 그 자리에서 크게 깨우쳐 만공 선사에게 큰절을 세 번 하고 물러났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혜암, 혜월 선사는 근대 최고의 고승인 경허(鏡虛, 1849~1912) 스님과 3·1 독립운동을 주도한 용성(龍城, 1864~1940) 스님, 만공 선사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도도한 법맥(法脈)을 이은 주인공들이다.

 

골프 실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 기를 쓰고 유명한 코치를 찾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름난 코치를 찾아 골프연습장을 바꾸기도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름난 코치를 찾아가 자신의 결점을 지적해 줄 것을 청한다.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코치에게 상당한 사례를 하면서까지 직접 함께 라운드하는 기회도 마련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유명한 코치를 만나 배움을 얻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한 코치라 해도 그 명성에 값할만한 가르침을 얻지 못한다. 유명한 코치가 전해주는 가르침은 평소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들이다. 스스로가 자기보다 골프를 못 치는 사람들에게 입이 닳도록 지적해 준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동안 자신이 소를 타고 있으면서 남의 소를 열심히 찾아다닌 격이다.

 

신형 드라이버가 나오면 참지 못하고 구입하는 것이나 몇 번 퍼팅을 놓쳤다고 손에 익은 퍼터를 팽개치고 새 퍼터를 사는 것도 소를 탄 채 소를 찾는 격이다.

 

자기 자신 속에 가르침의 씨앗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씨앗을 스스로 터뜨릴 생각은 않고 바깥으로만 돌아다닌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앞뒤를 가리지 못할 정도의 초보자라면 스승이 필요하지만 구력도 오래되고 기량이 일정 수준에 이른 골퍼라면 이미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가르침을 찾아내 갈고 닦을 줄 알아야 한다.

 

혹시 내가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보자. 

 

하루 종일 봄을 찾아도 봄은 안 보여
짚신이 다 닳도록 온 산을 헤매었네,
봄 찾는 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울타리에 매화꽃이 한창인 것을.        

(작자 미상의 禪詩)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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