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필 미컬슨이 갤러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태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PGA투어 올 시즌 네 번째 메이저인 PGA 챔피언십과 LPGA투어 퓨어실크 챔피언십의 경기 진행 과정은 대형 태풍의 진로를 추적하는 것만큼 흥미진진했다.

지난 21~24일(한국시간) PGA 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키아와 아일랜드 골프리조트의 오션코스(파72)는 지구촌 별들의 경연장으로 완전무결했다.

대서양의 거친 바다를 건너온 바람, 스코틀랜드의 링크스를 연상케 하는 황량한 모래밭과 거친 러프, 코스 속에 산재한 크고 작은 호수들은 지구촌 최고의 골퍼들이 맘껏 기량을 뽐내게 놔두지 않았다.
자비나 행운은 바랄 수 없었다. 마스크를 벗고 모여든 갤러리들의 열기가 그나마 잔인한 코스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에게 위안을 줄 뿐이었다. 

PGA투어 2020-2021시즌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이 조정되면서 US오픈과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두 번씩 열려 메이저 대회가 모두 여섯 번 열린다. 작년 9월 US오픈(브라이슨 디섐보 우승), 11월 마스터스(더스틴 존슨 우승), 그리고 올 4월 마스터스(마쓰야마 히데키 우승)에 이은 PGA 챔피언십은 시즌 4번째 메이저다.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 164명이 참가했다.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을 비롯해 2위 저스틴 토마스, 3위 존 람, 4위 잰더 셔플레, 5위 브라이슨 디섐보, 6위 콜린 모리카와, 7위 로리 매킬로이 등 톱랭커들이 총출동했다. 모두 우승 후보들이었다.

PGA투어가 발표한 파워랭킹 1위에는 이 대회 2012년과 2014년 우승자인 로리 매킬로이가 선정됐다. 2012년 우승할 때와 같은 코스여서 당시 8타차 압승을 한 그를 우승 후보로 지목했다.
한국선수로는 임성재를 비롯해 김시우, 이경훈, 안병훈과 2009년 이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아시아 국적 선수 최초로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던 양용은이 출전했다.

필 미컬슨은 처음부터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태풍의 눈이 형성되기 시작한 1라운드에서 미컬슨은 선두에 3타 뒤진 2언더파로 임성재와 함께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으나 우승 후보로 주목받지 못했다. 잘 생긴 외모와 좋은 매너, 모범 가장으로 대중적인 인기가 워낙 높아 나이를 잊은 그의 선전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오는 6월 16일로 만 51세가 되는 그가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펼치는 것 자체가 골프 팬들에겐 좋은 볼거리였다.

사실 이 대회 전까지 통산 44승에 다섯 번의 메이저 우승기록을 갖고 있었던 그는 타이거 우즈가 없었다면 진작 ‘골프황제’ 칭호를 받았을 것이다. 타이거 우즈의 그늘에서 2인자에 머물렀지만 그를 향한 골프 팬들의 사랑은 식지 않았다.

2라운드부터 미컬슨은 태풍의 눈 중심을 차지했다. 중간 합계 5언더파로 남아공의 루이 우스트히즌(38)과 함께 공동 선두에 나서면서 태풍의 진로를 주도했다.
3라운드에서 7언더파로 단독 선두로 나서자 우스트히즌과 브룩스 켑카(31)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를 추격했다. 4라운드는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했다. 한때 공동 선두를 내주기도 했으나 51세의 미켈슨은 자신보다 각각 13년 20년 젊은 두 선수의 추월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필 미컬슨이 챔피언 퍼트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미컬슨이 공동 2위에 2타 차 우승을 확정하는 파 퍼팅을 마무리하는 순간 18번 홀 주변은 축제의 장을 방불케 했다. 골프 팬들은 휴대폰으로 현장 모습을 담으며 박수와 환호로 노장 골퍼의 위대한 우승을 축하했다. 미컬슨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통산 45승에 메이저 6승 달성과 함께 만 50세 11개월로 메이저 대회 최고령 우승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었다. 이전 메이저 최고령 우승기록은 1968년 PGA챔피언십에서 줄리어스 보로스(미국)가 세운 만 48세였다. 

PGA투어 전체 50대 우승자는 샘 스니드(1965년 윈덤 챔피언십·만 52세 10개월 8일), 아트 월(1975년 밀워키 오픈·51세 7개월 10일), 데이비스 러브 3세(2015년 윈덤 챔피언십·51세 4개월 10일), 짐 번스(1937년 롱 아일랜드 오픈·51세 3개월 7일), 존 바넘(1962년 카준 클래식 오픈 인비테이셔널·51세 1개월 5일), 프레드 펑크(2007년 마야코바 골프클래식·50세 8개월 11일), 크레이그 스테들러(2003년 BC오픈·50세 1개월 18일) 등 7명이다.

22세 때 PGA투어에 뛰어든 그는 1993년부터 무려 26년간 세계랭킹 50위 이내에 있다가 2019년 11월 처음 50위 밖으로 밀렸다.
작년 8월 이후 PGA투어 대회에서 상위 20위 안에 한 번도 들지 못했고 컷 탈락도 잦았다. 시니어투어인 챔피언스투어에 3차례 참가해 2승을 거뒀다. 누가 봐도 그는 ‘지는 해’였다.
그러나 키아와 아일랜드 오션코스에서 그의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서녘으로 기울어가던 미컬슨의 태양이 구름을 뚫고 새로이 뜨는 해처럼 찬란히 빛났다.

그가 다시 PGA투어에서 우승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키아와 아일랜드 골프리조트의 오션코스를 지배한 4일은 그의 생애 가장 찬란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퓨어실크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슈웨이링. 사진제공=Getty Images


21~24일(한국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킹즈밀 리조트 리버코스(파71)에서 열린 LPGA투어 퓨어실크 챔피언십에선 최근 LPGA투어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직전 대회인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우승한 아리야 주타누간(25)의 언니 모리야 주타누간(26)이 3라운드까지 선두를 지켜 태국 자매의 연속우승이 예상되었으나 대만의 수웨이링(26)이 무서운 뒷심으로 막판 스퍼트를 올려 146번 대회 출전 만에 LPGA투어 첫승을 올렸다.

수웨이링은 청야니(32), 테레사 루(33)에 이어 LPGA투어에서 우승한 세 번째 대만 선수다. 한때 LPGA투어의 강자로 이름을 날렸던 청야니는 불가사의한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본 J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테레사 루가 2013년 LPGA투어 미즈노 클래식에서 우승한 이후 대만 선수의 우승이 없었다.
키 162.5cm로 단신이자만 열성 엄마의 지원으로 7세부터 골프를 시작, 기본이 탄탄하다.

그의 우승이 값진 것은 모리야 주타누간과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뒤 주타누간의 집요한 추격을 뿌리치고 거둔 승리라는 점이다.

한국 골프 팬들에겐 낯설지만 2014년 2부 투어인 시메트라투어를 거쳐 2015년부터 LPGA투어에서 활약한 8년 차다. 그동안 우승은 못했지만 꾸준한 성적으로 상금순위 중상위권을 유지해왔다. 2018년 바하마클래식 준우승이 그동안 최고 성적이다.

톱10에 태국선수 3명이 포진했다는 것도 LPGA투어의 새로운 풍경이다. 한국선수로는 김세영이 공동 7위로 유일하게 톱10에 들었다. 올 시즌 열린 10개 대회 중 국적별 승수는 미국 3승, 한국과 태국이 각 2승, 캐나다 뉴질랜드 타이완이 각 1승인 것만 봐도 지각변동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여자골프에 새로운 도전의 시대가 열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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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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