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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의 늪' 늑장 플레이에 대한 고찰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멤버 노예림 프로. 사진제공=Getty Images


[골프한국] LPGA투어 신인인 재미교포 노예림(19)이 지난달 2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의 아비아라GC에서 열린 기아클래식에서 늑장 플레이 때문에 벌금을 물었다.

노예림은 기아 클래식 3라운드 때 10번 홀과 12번 홀에서 정해진 시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벌금 1만 달러(약 1,133만원)를 부과받았다. 기아 클래식에서 공동 61위로 받은 상금 4,247달러의 갑절이 넘는다. 지난해에도 늑장 플레이로 벌금을 낸 전력이 있어 이번에는 벌금이 중과됐다고 한다.
같은 대회에서 컷 탈락한 재미교포 로빈 리(24)도 늑장 플레이로 2벌타를 받았다.

골프에서 늑장 플레이는 골프가 시작된 이래 공공의 적이었다. 골프에서 철저하게 배려를 강조하는 것도 늑장 플레이를 방지하기 위한 골퍼들의 자구책 성격이 강하다. 

늑장 플레이의 원인은 타고난 성정과 습관 탓도 없지 않겠지만 자신감 결여와 결단력 부족의 탓이 크다. 확신이 서지 않으니 망설이게 되고 어떤 샷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결단이 설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시간을 끌 수밖에 없다. 
망설임은 수렁을 닮았다. 길면 길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늑장 플레이는 스스로에게는 물론 동반자와 코스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세계적으로 늑장 플레이에 대한 제재가 더욱 강화되는 것도 이 같은 공감대 때문이다.

지난해 R&A(영국왕립골프협회)와 유럽골프협회가 샷 한번 할 때 걸리는 시간을 40초로 제한하고 이를 어길 경우 2,800달러의 벌금을 물리기로 한 뒤 PGA투어와 LPGA투어 등도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사실 늑장 플레이로 손가락질 받지 않는 기준은 애매하다.

주말골퍼들의 경우 라운드를 3시간 반 만에 마칠 수도 있고 4시간을 넘길 수도 한다. 선수들 기준으로 하면 이보다 시간이 더 걸려 4시간을 조금 넘는다. ‘뒷조는 앞조가 지나간 뒤 14분 이내에 그 홀을 통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을 보면 4시간 20분 정도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한 조의 홀 통과시간이 아니라 특정 선수의 늑장 플레이다.     

선수가 샷 한번을 할 때 적용되는 ‘40초 룰’도 칼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40초 이내에 샷을 하되 초과하더라도 20초는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티잉 그라운드를 떠나 두 번째나 세 번째 샷 지역에서 먼저 샷을 하는 선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다른 선수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첫 번째 샷을 하지 않는다면 미리 준비하고 있으므로 샷 차례가 왔을 때 40초 이상 걸릴 이유가 없다. 
자기 차례가 되어서야 비로소 샷 준비를 하는 게으른 선수에게 패널티를 주기 위한 룰인 셈이다.

‘40초 룰’ 위반이 처음 적발되었을 때는 경고를 받고 두 번째 위반하면 1벌타를 받는다. 세 번째 위반에는 2벌타, 또 위반하면 실격이다. 매치플레이에선 위반 즉시 해당 홀 패배로 처리된다.

늑장 플레이를 어떻게 가려낼까 궁금하겠지만 의외로 효율적으로 단속(?)된다.

대회 경기위원회는 늑장 플레이로 소문난 선수 명단 즉 샷을 하는데 60초가 넘는 선수의 블랙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 CCTV를 통해 전체 경기 흐름을 지켜보지만 경기 흐름에 지장을 줄 만한 선수가 있으면 경기위원이 따라붙기도 한다.

노예림의 경우도 경기위원이 갤러리 속에 섞여 따라다니며 속도를 점검해 벌금 부과 조치를 내린 것이다. 물론 노예림은 경기위원이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늑장 플레이로 동료들로부터 외면받음은 물론 골프 팬들로부터도 지탄 받은 골퍼들은 부지기수다. 

역대 늑장 플레이어로 거론되는 선수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국 기사 작위를 받은 닉 팔도(63)다. 그는 기피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호주의 그레그 노먼이 대표적 희생자다. 1996년 마스터스 마지막 날 노먼은 팔도의 늑장 플레이에 발목을 잡혀 메이저대회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두 선수는 경기를 앞두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당시 노먼은 2위 팔도에게 6타나 앞서 있었으나 첫 홀부터 벙커로 볼을 보내기 시작해 3개 홀 연속 보기를 하고 12번 홀과 16번 홀에서 볼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리는 등 78타를 치며 무너졌다. 노먼은 67타를 친 팔도에게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지만 늑장 플레이에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닉 프라이스(짐바브웨)도 “팔도는 소문난 늑장 플레이어다. 절망스러울 정도다. 그가 끼면 3명이 18홀 도는데 5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비난했다.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 재미교포 케빈 나, 신지애도 한때 늑장 플레이로 기피 대상으로 꼽혔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멤버 퍼닐라 린드베리. 사진제공=Getty Images

2018년 4월 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선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퍼닐라 린드베리(34·스웨덴)도 늑장 플레이로 한국 골프 팬들의 미움을 샀다.

샷 어드레스를 한 뒤에도 핀과 볼을 번갈아 바라보기를 몇 차례씩 반복하는 특유의 루틴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 했다. 퍼팅 자세를 취했다가도 확신이 안 서면 마크를 하고 다시 퍼팅 라인을 살폈다. 3라운드에서 그와 동반 플레이를 한 이유로 박성현은 경기위원에게 경기지연 경고를 받고 2타 차 단독 선두에서 이후 6개 홀에서 무려 5타를 잃고 무너졌다.
린드베리는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이틀에 걸친 8차 연장 끝에 박인비를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루틴이 심플한 박인비가 희생양이었다.

늑장 플레이 전과자들이 늑장 플레이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비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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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21-04-14 08:5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