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가 샷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가 샷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에서 망각은 병이면서 약이다. 
골프와 관련된 근육의 기억력은 보통 3일 정도라고 한다. 아침에 깨달았다가도 저녁이면 잊기도 하니 그보다 짧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프로선수들도 경기가 없는 날은 보통 5~8시간 연습을 하며 5백여 개 이상의 볼을 친다고 한다.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대회를 치르는 프로선수들이 비행기 안에서 연습용 그립을 만지작거리고 호텔 방에서 퍼팅연습을 하고 스윙머신을 놓지 않는 것도 골프 근육의 기억과 감각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주말골퍼들까지 없는 시간을 쪼개 연습장을 찾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지워진 골프 관련 기억력을 유지하거나 되살리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망각은 골퍼가 감기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 병에 가깝다.

스코틀랜드의 고전 골프 교본은 일찌감치 골프를 익히는 일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임을 암시했다. 이 교본은 ‘당신이 골프 기량의 향상을 원한다면 매일 연습하라. 현상유지를 바란다면 이틀에 한 번은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 보장된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그러나 골프에서 망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골프 근육의 망각은 치료를 필요로 하지만 마음의 망각은 골퍼를 치유하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미스 샷의 아픈 기억, 굿 샷의 환상이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다면 골퍼로선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샷을 날릴 때마다 나쁜 기억이 되살아나 미스 샷 공포에 시달리고 좋았던 샷을 재현해야겠다는 욕심에 미스 샷을 자초하는 일은 흔히 겪는 일이다.

 

아름다운 샷은 빈 마음에서 나온다. 선이나 명상 등 정신훈련을 안 해본 사람이라도 가끔은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있다. 스윙하는 순간 이런 상태가 되면 근육들은 가장 순수한 기억들만 가지고 아름다운 샷을 만들어낸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욕심이나 전의(戰意)는 물론 좋은 기억, 나쁜 기억까지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적어도 샷을 하는 순간만은 공(空)에는 못 미치더라도 무념무상(無念無想)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야 아름다운 샷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부분의 주말 골퍼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쉬 잊고 반대로 잊어야 할 것은 가슴에 담아 화를 부른다.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명나라 말엽 유학자 홍응명(洪應明)이 쓴 책으로 유교의 사상을 중심으로 노장(老莊)철학과 선(禪)을 접합시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길을 제시하는 주옥같은 350구절을 담고 있다. 

 

채근담에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풍래소죽 풍과이죽불유성)’이란 구절이 있다. ‘바람이 성긴 대나무 숲에 불어오면 대나무 잎사귀가 소리를 낸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숲에는 그 소리가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덕이 높은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마음을 움직여 대응하나 일이 끝나면 마음을 비워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패와 성공의 기억을 모두 잊고 허허로운 마음으로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는 골퍼가 진정한 골퍼일 것이다. 골프에서 맛보는 설렘은 바로 망각이 안겨주는 선물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