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12년마다 돌아오는 원숭이의 해이지만 2016년은 특별히 붉은 원숭이의 해인 병신년(丙申年)이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10천간(天干) 중 '병'이 음양오행 사상에서 붉은색을 띤다는 옛말에 따라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붉은색은 액운이 낀다는 속설 때문에 꺼리는 색깔이지만 최근 '붉은 악마' 등의 영향에 따라 '다이나믹한' 이미지로 변화됐다. 중국에서는 과거부터 진취적인 기상이 있다며 선호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속설들에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환갑을 맞는 사람들은 1956년 병신년에 태어났다. 골프계에서는 한국여자프로골프의 개척자이자 큰 별 고(故) 구옥희 등이 1956년생이다.

구옥희는 골프밖에 모르고 골프만을 사랑하며 살았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오빠들과 생활한 구옥희는 1975년 고양시 123CC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타고난 근성과 노력으로 사실상 독학으로 골프 스윙을 배운 구옥희는 197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제1기생으로 프로테스트를 통과해 회원번호 3번을 달았다. 

그는 한국여자골프 1세대로써 척박했던 환경에 굴하지 않고 30여년을 쉬지 않고 필드를 누볐다. 197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80년 5승, 1981년 4승을 거두는 등 한국에서만 20승을 거뒀다.

198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 문을 두드린 구옥희는 2005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23승을 거두는 맹위를 떨쳤다.

1988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우승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의 열기에 묻혀 구옥희의 우승 소식에 관심을 보여준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끊임없는 도전이 지금의 한국여자골프 전성시대 발판이 됐다.

구옥희는 2004년 한국여자골프 명예의 전당 1호로 입회했다.

후배들의 활약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노장은 KLPGA 창립 멤버로 한국여자골프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 했으며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시니어 투어와 정규투어를 병행하는 것 역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2011년에는 KLPGA 제11대 회장에 선출됐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구옥희는 2013년 7월 일본 시즈오카현의 한 골프장에서 연습을 한 뒤 골프장 숙소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큰 별로 졌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 역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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