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장정(34)이 3일 열린 은퇴식에서 22년간의 골프인생을 접고 제2의 삶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3년9월6일 한화금융클래식에서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과 함께 장정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순간은 한국 골프사에 길이 빛날 명장면이다. 1998년 LPGA투어의 신인인 박세리(당시 20세)는 US여자오픈 최종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워터 해저드에 들어가 탈출에 성공해 우승하면서 IMF위기로 실의에 빠진 한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장정(당시 25세)은 2005년 역시 LPGA투어 신인으로서 메이저대회인 웨타빅스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스웨덴의 아니카 소렌스탐, 소피 구스타프슨 등 세계의 강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 국민에게 하늘을 찌를 듯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한국의 골프팬이라면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과 장정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장면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1m54cm의 단신인 장정이 우승 직전 영국 사우스포트 로열버크데일 골프코스를 당당히 걸어가는 장면은 골프의 본고장 영국인들과 세계 골프팬들에게는 충격과 경이였다.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작은 소녀가 건장한 바이킹의 여성 후예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맞서 우승컵을 움켜쥐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본 세계 골프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환호와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세리의 US 여자오픈 우승이 실의에 빠진 한국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빛나는 스포츠 이벤트였다면 장정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은 골프 본고장에서 한국 여자골프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한 골프사의 대사건이었다. 당시 나는 골프채를 잡은 지 10년도 채 안되었지만 장정에게서 받은 감동과 흥분은 며칠이 지나도록 식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그런 장정(34)이 지난 3일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이미 두 달 전 LPGA투어 포틀랜드 클래식 마지막 날 동료 한희원(36)과 함께 “좀 더 어린 나이에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은퇴를 결심했다"며 은퇴의 뜻을 밝혔었다.
‘땅콩’이라는 애칭이 너무 잘 어울렸던 ‘작은 거인’ 김미현(37)이 2012년 9월 은퇴한 데 이어 장정이 공식 은퇴함으로써 한국골프의 상징 중의 하나였던 ‘작은 거인’ 2명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LPGA투어 6승, 준우승 3회의 김미현이 경이로운 오버스윙과 정교한 페이웨이 우드 샷으로 경탄의 대상이었다면 장정은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주변을 즐겁게 하는 낙천적 기질로 팬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선수로 사랑을 받았다.

전적만 놓고 보면 장정은 일본여자오픈 우승과 LPGA투어 2승(웨타빅스 브리티시 여자오픈,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에 그쳐 프로서는 그다지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장정은 김미현과 함께 ‘땅콩’ 혹은 ‘수퍼땅콩’이란 애칭을 나눠 가지며 투어와 투어를 벗어나서도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JJ’란 애칭으로 더 알려진 장정은 안면기형 어린이의 수술을 위한 꾸준한 기부활동과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한 기부와 봉사활동, 적십자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 골프팬들의 사랑이 유난히 깊었다.

박세리와 동갑인 김미현과 박세리 1.5세대인 장정이 은퇴함으로써 ‘박세리세대’는 박세리 혼자 남게 되었다.
2명의 ‘작은 거인’이 현역에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왜 우리에겐 줄리 잉스터(54)나 로라 데이비스(51) 캐리 웹(40) 같은 노장 선수가 없을까 생각해봤다. 서구에는 이들 외에도 베스 내니얼, 낸시 로페즈 등 40대를 넘어서도 현역으로 활약한 선수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들이 운동선수로서의 수명이 다한 것으로 치부되는 40, 50대에도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들과 당당히 겨루며 골프선수로서의 활기찬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돈을 벌기 위한 골프’와 ‘즐기면서 돈도 버는 골프’의 차이에서 찾고 싶다. 예외도 없지 않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부모의 방향 목표 설정에 따라 만사를 제쳐두고 골프에 전념해서 골프선수가 되는데 비해 서양의 경우엔 자신이 선택하면 부모의 간접 지원을 받으며 스스로 골프선수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을 밟는다. 전자의 경우는 성공과 돈이 최종 목표이고 후자의 경우는 자기만족 자아성취가 우선이고 돈벌이는 부차적이다. 노동과 놀이의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부친의 목표 설정과 강압적 훈련으로 대선수가 될 수 있었던 박세리가 앞으로 얼마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염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세리선수가 골프를 생업이 아닌 자아성취와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아 우리나라에도 줄리 잉스터, 로라 데이비스, 캐리 웹 같은 프로 엄마골퍼, 아줌마골퍼가 나타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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