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의 모든 것 Part1. People
[goodbye] 구옥희에서 박인비까지.

KLPGA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서 환하게 웃는 구옥희.
2.3) 동기 김성희(사진2), 故 한명현(사진3)과 함께. 4)1988년 LPGA스탠드더 레지스터 클래식에서. 5)1979년 1,2,3기 여자프로부 선수들과 함께. 6)1985년 JLPGA기분레이디스 우승 당시. 7)세리키즈 대표주자 박인비 신지애와 한 때 8)구옥희의 영정에 바친 체육훈장 맹호장.
한국은 새로운 여제 박인비의 승전보에 돌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별이 뜨고 지듯 한국여자골프의 큰 별이 지고 말았다. 한국여자골프의 선구자 구옥희가 한여름 신기루처럼 세상과 이별했다. 이제 그녀는 없지만 많은 후배들이 그녀가 닦아온 그 길을 걸으며 ‘별’이 될 것이다.


한국여자골프의 큰 별이 졌다.

지난 7월10일 일본 시즈오카 현의 한 골프장 숙소에서 한국여자골프의 선구자 구옥희가 심장마비로 향년 오십 일곱의 나이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그녀를 사랑했던 동료, 후배들과 골프계 인사들 모두 망연자실했다. 빈소에는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아 통곡하는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8일 영결식을 마치며 영원히 전설로 함께 할 것 같았던 그녀가 세상과 영영 이별했다.

3년 전 신지애가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며 구옥희의 KLPGA 최다승(20승) 타이기록을 세운날 그녀를 만났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며 후배를 칭찬하며 행복해하던 구옥희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구옥희는 골프밖에 모르고 골프만을 사랑하며 살아온 여인이었다. 최초로 시작해 최고로 끝나는 이름 구옥희의 인생은 도전 그 자체였다.123CC 캐디로 골프계에 입문했던 구옥희는 타고난 근성과 노력으로 골프를 독학했고, 한장상 프로와 사제의 인연을 맺으며 진정한 프로골퍼로 탄생했다.

1978년 KLPGA 1기 투어프로로 선발, 회원번호 3번을 단 구옥희는 한국여자골프 1세대로써 척박했던 환경에 굴하지 않고 30여년을 쉬지 않고 필드를 누볐다. 1979년 쾌남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만 20승, 1985년에는 일본 열도로 발길을 돌리며 23승의 우승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1988년 88올림픽이 열렸던 해에는 LPGA 투어에서 한국선수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지금의 한국여자골프 전성시대를 열었다.

후배들의 활약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노장은 KLPGA 창립 멤버로 한국여자골프발전에 이바지하고싶어 했으며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시니어 투어와 프로대회를 병행하는 것 역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어서”라고 말했던 그녀는 한국여자골프의 진정한 선구자였다.

언제나 늘 현역이기를 바랐던 구옥희는 자신의 골프인생을 “운명”이라는 두 글자로 함축했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영광과 감격의 순간들을 만들어갔던 시간으로 회상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전했던 그녀의 인사말을 전하며, 한국여자골프의 전설 구옥희에게 작별을 고해본다.

“아직도 필드에 서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아요. 나이는 들어가지만 가슴속 열정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최고의 모습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골프한국(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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