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자골프 전설' 구옥희 인생 스토리
1978년 국내 첫 여자프로, 일본 거쳐 미국 도전… 1988년 LPGA 한국인 첫승
철저한 자기 관리로 49세에도 JLPGA 정상
"필드에 있을 때 가장 편해" … 골프와 결혼한 '대모'

한국 여자프로골프 1세대 고(故) 구옥희의 영결식이 18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제단에 고인의 영정 사진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서한 체육훈장 맹호장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한국여자골프는 세계 최강이다. 박인비(25ㆍKB금융그룹)는 2013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메이저 3연승을 포함해 6승이나 올렸다. 올해 LPGA 투어 16개 대회에서 한국은 9승을 합작했다. 한국(계) 선수들이 LPGA 투어에서 통산 119승을 거둘 수 있던 것은 '개척자' 구옥희(57)가 있어 가능했다.

구옥희는 지난 10일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한 골프장 숙소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일본 전지훈련을 떠날 만큼 골프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지만 너무 일찍 골프와 작별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여자골프의 한 획을 그은 구옥희에게 체육훈장 맹호장(2등급)을 추서했다.

▲한국여자골프의 1세대

구옥희는 남자들이 골프를 치는 것도 특별했던 시대에 여자프로골프 시대를 연 선구자였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오빠들과 생활한 구옥희는 1975년 고양의 123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를 처음으로 접했다.

구옥희는 지독한 노력파였다. 캐디로서 일과를 마친 뒤 24박스를 칠 정도로 땀을 흘렸다.

그는 골프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혼자 골프 스윙을 배웠지만 뛰어난 실력을 뽐내자 동료로부터 선수로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때마침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여자 골프 활성화를 위해 협회 내 여자부를 신설했고, 1978년 한국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들을 대상으로 프로테스트를 했다.

구옥희는 그 해 5월 경기 양주의 로얄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프로 테스트에서 출전했고, 한명현, 강춘자, 안종현 등과 함께 프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남자 골프 선수들이 프로 테스트를 보는 가운데 한쪽에 10여명의 여자 선수들이 모여서 경쟁했다.

▲한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까지

한국여자골프의 시작은 미약했다. 프로가 됐지만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978년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선수권대회 1개만이 개최됐고, 이후 10년 동안 한 시즌 대회 수는 5∼7개에 불과했다.

구옥희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보여줬다. 1979년 쾌남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에는 5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국내 1인자로 등극한 구옥희는 KLPGA 투어에서 20승을 거뒀다.

국내를 평정한 구옥희는 더 큰 무대로 눈을 돌렸다. 재일동포의 권유로 198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의 문을 두드린 구옥희는 2005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23승을 올리는 맹위를 떨쳤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2005년에는 마흔 아홉의 나이에 JLPGA 투어 서클K 선크스 레이디스 오픈에서 정상에 서는 기염을 토했다.

구옥희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자신의 꿈을 펼쳤다.

그는 1988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 출전해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거둔 승수는 44승(국내 20승ㆍ해외 24승)이나 됐다.

구옥희는 1994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부회장직을, 2011년부터 2012년 3월까지는 KLPGA 제11대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못 말리는 골프 사랑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구옥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대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골프에 대한 열정을 쏟았다.

한국여자골프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명예의 전당 1호로 입회한 구옥희는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정규대회에 출전, 후배들과 실력을 겨뤘다. 결과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예선 탈락.

일부에서는 구옥희를 비판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이룬 분이 국내 대회까지 출전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필드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는 구옥희는 국내 대회에서도 쓴 맛을 봤지만 골프에 대한 사랑까지는 접지 않았다.

그는 골프를 위해 태어난, 평생 골프와 결혼한 한국여자골프의 전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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