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부터)김미현 박세리 박지은. 사진=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본부
우리는 그를 ‘슈퍼땅콩’이라고 불렀다. 1미터 54센티의 작은 키에서 유래한 애칭이지만 단신의 핸디캡을 훌륭하게 극복한 노력을 높이 평가해 골프팬들은 ‘슈퍼’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LPGA라는 큰물에 뛰어들어서도 주눅 들지 않고 박세리 박지은과 함께 한국 여자골프의 트로이카로 대활약, ‘작은 거인’이라는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스윙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의 골수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두 다리로 지면을 딛고 전신을 꼬아 드라이버 헤드가 왼쪽 무릎에 이르는 오버 스윙을 한 뒤 볼을 가격하기까지의 격렬한 동작은 경이 그 자체다. 절로 눈은 휘둥그레 해지고 입에서는 탄성이, 손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박세리와 함께 최대의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갤러리의 성분은 박세리를 따르는 팬들과 달랐다. 박세리를 따르는 갤러리들은 그냥 유명한 대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기 위해 나왔지만 김미현을 쫓는 갤러리들은 김미현의 마술 같은 스윙과, 우드를 아이언처럼 세우는 신기를 보기 위해 나온 광신도들이었다.

여기에 키가 작거나 힘이 없거나 등등의 나름의 신체적 핸디캡을 갖고 있는 갤러리들은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골프를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기 위해 그를 따라다녔다. 김미현의 플레이 현장에 가봤던 후배의 전언에 따르면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광적인 팬들은 거의 스윙 한 동작 한 동작에 탄성과 박수갈채를 보내며 마치 공연을 즐기듯 그의 플레이에 매료된다고 했다.  

김미현은 한국 여자골프의 국보 같은 존재다. 아마도 두 번 다시 김미현 같은 선수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장정이 있지만 키가 작다는 공통점을 빼면 김미현에게서 발견하는 경이는 찾기 어렵다. 일본의 미아자토 아이, 미아자토 미카 등도 작은 키의 핸디캡을 오버 스윙으로 극복하고 있지만 김미현에 견줄 수는 없다.  

그런 김미현이 은퇴를 선언했다. 다음 달 열리는 KLPGA 외환-하나뱅크챔피언십에 참가하는 것으로 프로선수로서의 대미를 장식하겠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89년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으니 23년만이다. 선수로서 은퇴하지만 후배를 지도하는 골프지도자로서 계속 골프채를 잡겠다고 했으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그가 이룬 업적에 대한 대견스러운 마음과 함께 이제는 김미현 특유의 파격적인 스윙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지난 7월 은퇴를 선언한 박지은에 이은 김미현의 은퇴는 우리나라에도 줄리 잉스터 같은 ‘주부골프선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지는 섭섭함도 뒤따른다. 박세리가 최근 열린 KDB대우증권클래식에서 우승, 선수로서의 장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결혼 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아마시절부터 그의 족적은 뚜렷했다. 국가대표를 거쳐 아마 신분으로 94년 톰보이여자오픈과 95년 한국여자오픈 등 2개의 오픈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1996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미도파여자오픈과 한국여자오픈 등 3승을 거두며 박세리에 이어 상금 2위를 차지했고 박세리가 미LPGA투어에 진출한 97, 98년 2년간 각 3승씩을 거두며 상금왕 자리에 올라 국내 무대를 평정했다.
박세리에 이은 한국인 두 번째로 99년 미LPGA투어에 입성한 그는 단숨에 스테이트팜레일클래식과 퍼스트유니온 벳시킹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신인왕에 올랐고 2007년 셈그룹챔피언십까지 투어에서 통산 8승을 거두고 톱10 진입도 12번이나 되었다. 한국에서만 우승한 것도 15차례나 된다.

국가 유도대표 출신인 이원희와 결혼해서 출산한 이후에도 선수로 남기 위해 나름 애썼지만 무릎 수술에 이어 최근엔 왼쪽 발목 수술까지 받는 등 부상에 시달려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하는데 한계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은퇴는 하지만 김미현 골프아카데미를 중심으로 골프선수 지도 양성에 나서겠다고 하니 자신을 닮은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발굴해주기를 바란다.
그동안 팬들에게 보여준 멋지고 당찬 스윙, 그리고 이룬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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