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와 아일랜드 골프리조트 오션코스에서 열린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필 미켈슨이 최종라운드 17번홀에서 샷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여러분들은 어떤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 보기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 혹은 추억이 담긴 음식?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제각각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맛을 반추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셰프가 왜 이 식재료를 썼을까, 전체적인 구성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까, 음식의 텍스처는 어떤 조리법으로 만들어낸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셰프의 의도를 읽어내도록 유도하는 미식의 매력은 마치 훌륭한 예술작품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프코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난하고 스코어가 잘 나오는 코스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이나 삼겹살 같은 음식에 비유할 수 있을테고, 풍광이 아름답고 조경이 잘 되어 있는 코스는 플레이팅이 멋들어진 음식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셰프의 의도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음식에 매력을 느끼는 제가 선호하는 코스는 설계자의 의도를 전략적으로 읽어내고 공략해야 그 참맛을 알 수 있는 코스들입니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원형은 스코틀랜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양을 치는 목동들이 재미 삼아 초원의 돌멩이를 양몰이용 지팡이로 후려치며 놀았고, 그것을 토끼굴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이 홀의 개념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벙커는 목동들이 비바람을 피하던 공간이었다고 하지요. 이처럼 초기의 골프코스는 스코틀랜드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닮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들어 골프의 인기가 높아지고, 설계 및 건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현대적인 면모를 가진 골프코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인트 앤드류스와 오거스타를 설계한 알리스터 맥킨지, 페블비치를 설계한 로버트 트렌트 존스 등과 같은 거장들이 역사에 길이 남을 코스들을 탄생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 모던 골프코스 설계의 방점을 찍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피트 다이입니다. 

PGA 선수들도 혀를 내두르게 하는 TPC소그래스 스타디움코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션코스, 하버타운 골프링스 등이 바로 피트 다이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그는 언제나 16, 17, 18번홀을 각각 파5, 파3, 파4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중에서도 17번홀 파3를 가장 난이도 높게 설계하는 것으로 악명 높습니다. 

▲TPC 소그래스의 스타디움 코스에서 열린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저스틴 토마스가 최종라운드 17번홀에서 샷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올해 3월 PGA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우리나라의 안병훈 선수가 TPC소그래스 17번홀에서 공을 네 번이나 물에 빠뜨린 끝에 9온 2퍼트로 옥튜플보기라는 생소한 스코어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아일랜드 그린임에도 그린 주변 벙커가 전혀 없는 디자인인데다 그린이 좁고 단단하기 때문에 공을 높은 탄도로 정확하게 떨어뜨리지 않으면 여지없이 워터헤저드로 빠지게 됩니다. 일년에 이 홀에서 물에 빠지는 공이 10~14만개나 된다니 그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지난주 PGA 챔피언십이 열린 키아와 오션 코스의 17번홀도 마찬가지입니다. 골프 해설가 데이비드 페허티가 ‘우주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 라고 묘사했을 정도이니 더 긴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네요.

피트 다이가 위대한 설계자로 추앙받는 이유가 코스를 어렵게 설계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한 의도를 담아 설계하고, 골퍼들로 하여금 명확한 전략적 선택을 하게끔 유도함으로써 골프라는 스포츠의 심미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이 피트 다이의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겟 골프’ 라고 불리는 피트 다이의 철학이자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피트 다이가 직접 설계한 코스를 만나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족들과 함께 설립한 다이디자인에서는 한국에 모두 8개의 골프코스를 디자인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을 만한 코스는 피트 다이의 아들인 페리 오 다이가 디자인한 우정힐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코스는 한국의 베스트 코스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단골로 자리매김하는, 그야말로 국가대표급 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코스에서는 2003년부터 KPGA 한국오픈이 개최되고 있는데요. 한양컨트리클럽에서 열렸던 2002년 대회 때, 19세의 나이로 참가한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23언더파로 우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당시 코오롱그룹의 고 이동찬 회장께서 대회장소를 우정힐스로 옮기고 난이도를 더 높이라고 주문했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우정힐스로 옮겨서 열린 2003년 대회에서는 초청선수로 참가한 괴력의 장타자 존 댈리가 2언더파로 우승했다고 하니 PGA 선수들도 이 코스의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을 것 같습니다.

이 밖에 캐슬렉스(제주), 비전힐스(경기), 아시아드(부산), 사이프러스(제주), O2(강원), 이븐데일(충청), 페럼(경기) 등이 다이디자인에서 설계한 코스들입니다. 이런 코스에서 라운드를 하시게 된다면, 피트다이의 설계철학을 미리 음미해 보고 가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미슐랭 스타 셰프의 창의적인 음식을 맛보기 전에 기본적인 정보를 학습하고 가듯이, 설계자의 철학과 의도를 미리 이해하고 티잉그라운드에 오른다면 그 골프코스는 분명 더 큰 감동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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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도하: KLPGA, LPGA Class A 프로골퍼이며, 방송, 소셜미디어, 프로암, 레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한 골프&라이프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거울 삼아, 골프를 더 행복하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지식과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김도하의 골프산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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