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RBC 헤리티지에서 동반 경기한 맷 쿠차와 김시우 프로.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지난주 열린 PGA투어 RBC헤리티지 3라운드에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발생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김시우 선수가 3번홀 프린지에서 약 10M 거리의 버디 퍼트를 했는데 그 공이 신기하게도 홀 가장자리에 딱 멈춰선 것이었습니다. 

PGA투어의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이 장면을 두고, ‘Cliffhanger(클리프행어; 1.절벽에 매달린 사람, 2.마지막까지 그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황)’라고 묘사할 만큼 공이 아슬아슬하게 홀 가장가리에 걸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시우 선수는 아쉬움을 넘어서 ‘이 공이 어떻게 홀 안으로 떨어지지 않지?’ 하는 표정과 함께 계속해서 공을 살펴봤는데요. 약 55초가 지난 시점에 드디어 공은 홀 안으로 떨어지며 갤러리들의 환호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같은 조에서 라운드를 하던 맷 쿠차 선수는 김시우 선수와 함께 이 장면을 세심하게 관찰하였고, 공이 홀로 떨어지자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김시우 선수에게 축하를 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시우 선수의 마커(Marker 또는 Scorer, 스코어를 기록해 주는 동반자)로서 경기위원을 불러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까지 건네었습니다. 

아쉽게도 경기위원은 골프 규칙 13-3에 따라, 공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시간이 10초를 경과하였으므로, 1벌타를 부과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맷 쿠차 선수는 김시우 선수의 공이 홀 가장자리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며, 움직이는 공을 칠 수는 없지 않냐는 의견을 경기위원에게 열심히 전달하였습니다. 마치 맷이 김시우 선수의 변호인과 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맷 쿠차 선수와 김시우 선수는 1, 2라운드에서 합계 4언더파로 동타를 기록하고 3라운드에서 같은 조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맷 쿠차 선수는 김시우 선수가 1분 가까이 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을 함께 해준 것도 모자라 김시우 선수가 벌타를 받지 않도록 열심히 변호까지 해 준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골프라는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훌륭한 동반자의 존재가 그것입니다.

제가 위에 ‘마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골프 스코어는 사실 플레이어 본인이 작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캐디는 더더욱 아니겠지요.) 스코어는 함께 라운드하는 동반자 중 지정된 플레이어, 즉 마커가 룰에 따라 작성을 하는 것이고, 그 스코어의 당사자는 라운드가 마친 뒤, 스코어카드상의 이상 유무를 확인 후, 서명을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 행위를 영어로 ‘Attest(입증하다)’ 라고 합니다. 골프는 심판 없이 플레이어들이 규칙을 스스로 준수하는 신사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동반자들끼리 공정하게 스코어를 기록하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자리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합의된 절차에 있어서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상대선수의 스코어를 잘못 기록하거나 룰을 잘못 적용해서 불이익을 안기게 된다면 골프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될까요? 
맷 쿠차 선수가 경쟁심에 눈이 멀어 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김시우 선수에게 항의하거나 경기위원에게 무턱대고 부정적인 증언을 쏟아내었다면 언론과 팬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훗날 판정시비로 얼룩진 라운드로 기억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김시우 선수의 훌륭한 동반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 맷 쿠차 선수 덕분에 이 장면은 골프팬들에게 훈훈한 미소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처럼 심판이 없는 종목인 골프에서 오히려 ‘판정시비’라는 표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저는 ‘아름다운 아이러니’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진=골프한국


훌륭한 동반자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맷 쿠차 뿐만이 아닙니다. 2019년부터 플레이 시간 단축을 위해 볼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5분에서 3분으로 줄어들었는데요. 로리 맥길로이 같은 슈퍼스타조차도 러프에 빠진 동반자의 볼을 함께 찾느라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골프에 있어서 동반자란 결코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고 있는, “골프는 동반자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파(Par)와 경쟁하는 것’이라는 샘 스니드의 명언을 지난 주 맷 쿠차 선수가 보여준 성숙한 동반자 정신을 통해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골프팬 여러분께서도 자신의 스코어보다 동반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더 집중해 보신다면 어디에서나 환영받고 존경받는 골퍼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번 주부터 실행에 옮겨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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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도하: KLPGA, LPGA Class A 프로골퍼이며, 방송, 소셜미디어, 프로암, 레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한 골프&라이프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거울 삼아, 골프를 더 행복하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지식과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김도하의 골프산책'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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