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슨 디섐보가 2021년 3월 베이힐 클럽&로지에서 열린 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최종라운드 6번홀에서 티샷을 날리고 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지난 주 열린 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브라이슨 디섐보가 자신의 별명인 ‘헐크’와도 같은 플레이를 선보이며 통산 8승을 기록하였습니다. 

디섐보는 특히 공식거리가 555야드에 달하는 6번홀(파5)에서 호수를 가로지르는 370야드급 드라이버 쇼를 두 번이나 선보이며 골프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드라이버는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골프 격언이 등장하기 딱 좋은 순간이었지만, 디섐보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림으로써 상황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벌크업 등 비거리를 위한 실험과 도전을 계속해 온 디섐보가 드라이버는 이제 ‘쇼’, 그 이상이 되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입니다.

디섐보가 단지 드라이버 장타를 뿜어대었기 때문에 운 좋게 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데이터를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최근 PGA나 LPGA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데이터는 ‘SG(Stroke Gained)’ 라는 수치입니다. 2007년 콜롬비아 대학교의 마크 브로디 교수가 개발한 이 지표는 특정 선수가 평균 대비 얼마나 타수를 절약했는지 설명해 줍니다. 상대적인 지표이기 때문에 선수의 능력과 퍼포먼스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PGA 홈페이지에서 ‘SG: Total’ 순위를 보면 디섐보가 2021시즌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총 26번의 라운드에서 라운드당 2.426타를 (PGA 평균 대비) 절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SG’는 다시, ‘SG: Off The Tee’, ‘SG: Approach The Green’, ‘SG: Around The Green’ 그리고 ‘SG: Putting’ 으로 나뉩니다. 즉, 티샷(파4, 5 홀), 어프로치 샷(파3 티샷 포함), 그린 주변 30야드 이내에서의 샷, 그리고 퍼트를 통해 다른 선수들보다 타수를 얼마나 절약했는지 나누어 파악하는 것이지요.

자, 이 지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셨다면, 왜 디섐보가 드라이버는 더 이상 쇼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디섐보는 이번 대회에서 ‘SG: Off The Tee’, 즉 티샷을 통해 라운드당 1.758타를 절약하였습니다. 2위인 임성재 선수가 1.298타를 줄인 것과는 매우 큰 격차를 보이고 있으니 디섐보가 얼마나 압도적인 드라이버를 뿜어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SG: Off The Tee’, 즉 ‘티샷을 통해 절약한 타수’는 거리의 차이에 따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PGA 홈페이지에 언급된 예시를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리키 파울러가 446야드 파4홀에서 드라이버로 330야드를 보낸 다음, 세컨샷으로 116야드를 날려 온그린에 성공한 다음, 16피트 11인치 퍼트로 버디를 낚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데이터에 따르면, PGA투어에서 446야드 파4홀의 평균 타수는 4.1타이고, 116야드 거리에서 홀까지는 평균 2.825타가 소요됩니다. 그렇다면 PGA 선수들이 446야드 파4홀에서 116야드 지점까지 전진하는 데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타수는 4.1-2.825=1.275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리키는 1타를 쳤으니, 티샷으로 절약한 타수는 1.275-1=0.275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산수이지만, 골프팬 여러분들께서는 금새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2021년 PGA 투어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차지한 브라이슨 디섐보가 트로피를 들고 인터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디섐보가 티샷을 통해 절약한 타수가 매우 크다는 것은 그만큼 티샷의 가치가 높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라운드당 1.758타를 절약했으니, 파3홀을 제외한 14개 홀에서 티샷당 0.125타를 경쟁선수들 대비 절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흘, 56개 홀이면 무려 7타입니다. 이 수치를 보고도 ‘드라이버는 쇼’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 대회 우승상금은 한화로 약 19억원이고, 7타차인 공동 8위의 상금은 약 3억2천만원이니, 1타의 가치는 무려 2억2천만원이 넘습니다.

드라이버의 가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디섐보는 티샷 이후 그린 주변 30야드 이내까지 보내는 샷에 있어서도 라운드당 1.062타를 줄이며 9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해 그가 악마의 발톱이라 불리는 윙드풋 코스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유일하게 언더파를 기록하며 우승 할 때에는 ‘SG: Off The Tee’, ‘SG: Approach The Green’ 에서 모두 3위에 올랐었는데요. 모두가 페어웨이를 사수하려고 할 때, 과감하게 장타를 날린 다음, 가급적 짧은 클럽으로 그린을 공략했던 그의 창의적인 전략이 통했던 결과였습니다. 

결국, 멀리 날린 티샷은 티샷 그 자체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어려운 코스에서 세컨샷을 더 수월하게 한다는 부수적인 가치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디섐보는 이 사실을 꿰뚫어 보았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호수 너머로 장타를 시도한 것이지, 단지 ‘쇼’나 볼거리를 위해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프라는 스포츠를 어떤 시각에서 즐기는지는 골퍼 개개인의 성향과 기호에 달려 있고, 그 다양성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프에 정답은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섐보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골프라는 게임을 해석했고, 나름의 해법을 위한 실험과 도전을 계속했으며, 스스로 그 해법을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디섐보와 같은 창의적인 시도가 골프의 전통과 건강한 마찰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놀라운 게임에 지속적인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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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도하: KLPGA, LPGA Class A 프로골퍼이며, 방송, 소셜미디어, 프로암, 레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한 골프&라이프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거울 삼아, 골프를 더 행복하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지식과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김도하의 골프산책'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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