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제75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김아림 프로. 사진제공=Chris Keane/USGA


[골프한국] 제75회 US 여자오픈 챔피언십이 대한민국의 김아림 프로의 우승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김아림 프로는 명실상부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10번째 한국선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김아림 프로, 그리고 궂은 날씨 속에서도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고백컨대, 3라운드가 종료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제가 대회를 앞두고 쓴 칼럼의 내용과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바람에 마음을 졸이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시부노 하나코가 4언더파로 리더보드 최상단에 자리잡고 있었고, 한국 선수 중에서는 김지영2프로가 1언더파로 공동3위에, 고진영, 김세영, 김아림, 유해란 프로가 1오버파로 공동 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쌀쌀한 날씨와 길고 까다로운 코스로 인해 언더파에 남아있는 선수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가운데, 과연 우리 한국 선수들이 3~5타 차이를 극복하고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을지 결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마음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라운드 초반 샷감을 조율하던 김아림 프로가 5번홀 에이프런에서 시도한 버디 퍼트가 완벽하게 홀인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KLPGA 부동의 장타 1위인 김아림 프로는 올 시즌 퍼트 순위에서 65위, 평균 퍼트 수 31개에 그치고 있었는데요. 

이 퍼트를 보는 순간, 어쩌면 오늘 김아림 프로에게 ‘그 분’이 오셨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전달될 정도였습니다.

이어진 6번홀에서 김아림 프로가 퍼트라인을 완벽하게 읽어내며 마치 ‘물방울’처럼 공을 떨어뜨린 그 순간, 느낌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7번홀 벙커세이브에 이어 8번홀에서 다시 버디를 낚아낸 김아림 프로는 16, 17, 18번홀에서 해트트릭 버디를 선보이며 그야말로 환상적인 마무리로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김아림 프로는, 우승 트로피(진품은 1년간 보관 후 다음 우승자에게 전달, 복제품은 영구 소장), 우승 메달,  US 여자오픈 10년, 타 메이저 대회 5년간 출전권, 2년간 LPGA 투어 출전권(비회원 자격), 그리고 우승상금 100만달러(약 11억원)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제75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김아림 프로가 4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Jeff Haynes/USGA

뿐만 아니라, 고진영 프로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여 준우승을 차지하며 LPGA 투어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출전권을 획득했고, 박인비, 이정은6프로는 공동 6위를 차지하며 역대 챔피언의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멋진 활약을 지켜보았을 박세리 프로는 얼마나 뿌듯하고 감개무량했을까요? 1998년 당시 박세리 프로의 ‘맨발의 투혼’을 보며 용기를 얻었던 골프팬들이 이번 대회에서는 또 어떤 희망을 보았을까요? 

아무리 보아도 이 US 여자오픈은 우리나라 골프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이어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멋진 활약으로 빛난 이번 대회를 보며 저는 두 가지의 골프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첫째, ‘골프는 장갑을 벗기 전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다’입니다. 5타차라는 결코 작지 않은 격차가 단숨에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 골프입니다. 골프는 물론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결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의지를 갖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드라이버는 쇼이고, 퍼트는 돈이다’라는 격언입니다. 이 말은 남아공의 골프선수 바비 로크가 남긴 말인데요. 원문은 ‘Drive for show, putt for dough’ 입니다. ‘도우(dough)’ 는 피자에 쓰이는 것과 같은 밀가루 반죽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돈’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평소 월등한 드라이버 비거리에 비해 퍼트 실력이 좋지 못했던 김아림 프로가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퍼트로 얻은 이득(stroke gained)은 7.43타로 2004년 챔피언인 멕 말론 선수가 기록한 7.88타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장타여왕이 완벽한 퍼트까지 장착했으니 어쩌면 우승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임성재 선수가 마스터스 준우승의 쾌거를 이룬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선수들이 LPGA 무대를 수놓는 것을 보니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합니다. 골프팬 여러분들께서도 좋은 기운을 얻어 차분히 내년 시즌을 대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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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도하: KLPGA, LPGA Class A 프로골퍼이며, 방송, 소셜미디어, 프로암, 레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한 골프&라이프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거울 삼아, 골프를 더 행복하고 의미있게 즐길 수 있는 지식과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김도하의 골프산책'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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