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 동반 경기하며 우승을 다툰 임성재 프로, 더스틴 존슨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더스틴 존슨의 마스터스 역대 최저타 우승, 그리고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우리나라 임성재 선수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린 가을의 마스터스, 골프의 향연을 만끽하셨나요?

꽃들이 만발한 4월의 마스터스와는 완연히 다른 느낌 속에서 단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이 있었다면, 역시나 오거스타는 올해도 수많은 골프의 스토리들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오거스타 코스를 67타 코스로 공략하겠다고 선언한 브라이슨 디섐보가 샷 난조를 보이며 최종스코어 2언더파로 34위에 그친 반면,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에서 디섐보보다 65야드 짧은 63세의 백전노장 베른하르트 랑거가 3언더파로 29위를 기록하면서, 코스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어우러지는 것이라는 골프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또 한 가지 큰 화젯거리는, 바로 디펜딩 챔프로 나선 타이거 우즈가 마지막 날 아멘코너 중 두 번째인 12번홀(파3)에서 기록한 '셉튜플(septuple) 보기’라는 생소한 스코어였습니다. 

'septuple'은 7을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 'sep'에 배수를 뜻하는 '-tuple' 이 더해진 용어로, 7오버파. 그러니까 파3인 12번홀 기준으로는 총 10타를 쳤다는 의미입니다.

주말골퍼들은 트리플보기나 쿼드러플보기, 속칭 '양파'가 나오면 동반자들의 배려와 묵인 속에 겸허히 골프공을 집어들고 홀아웃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이는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암묵적인 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보니 셉튜플보기와 같은 스코어는 어쩌면 이글이나 홀인원보다도 더 접하기 어려운 스코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파3에서 10타라니... 그것도 마스터스에서 골프황제인 타이거가, 그야말로 OMG 이 저절로 나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단은 코로나19로 갤러리 없이 치러진 2020년 마스터스 12번홀에서 티샷을 하는 타이거 우즈. 하단은 2008년 같은 홀에서 경기하는 우즈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그런데 이 12번홀은 정말 보기만 해도 아찔한 홀입니다. 핀의 코앞에는 워터헤저드가 있는데, 티샷이 조금만 짧거나 백스핀이 걸리면 여지없이 공이 물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맙니다. 그렇다고 조금 여유있게 칠 경우, 그린 뒷편에 작지만 만만찮은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지요. 벙커 탈출은 또 어떤가요? 자칫 잘못하면 핀을 지나 워터헤저드에 빠지기가 일쑤입니다. 

바로 타이거가 이번에 이 모든 덫에 걸린 겁니다. 티샷이 물에 빠지고(2타), 헤저드 뒤에서 친 샷이 다시 물에 빠지고(2타), 그 다음 샷이 벙커에 빠지고(1타), 벙커샷이 다시 물에 빠지고(2타), 벙커에서 다시 친 샷이 온그린(1타), 그리고 투 퍼트(2타), 이렇게 10타가 나온 것이지요. 

저는 이 중계를 보다가 제발 물에 그만 좀 빠지기를 바라며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아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타이거가 경기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걱정도 되었지요. 

하지만 골프황제는 달랐습니다. 10타를 치고 홀아웃한 타이거는 그 뒤로 남은 6개 홀에서 5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보통의 골퍼라면 골프채를 부러뜨려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타이거가 보여준 이 엄청난 집중력은 어쩌면 우승보다도 더 빛나는 품위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싶습니다.

하지만 이 10타도 마스터스의 한 홀 최다타 기록은 아니었습니다. 2018년 마스터스에서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15번홀(파5)에서 무려 13타('옥튜플보기' 라고 합니다)를 적어내었습니다. 

워터헤저드에 무려 다섯 번이 빠졌던 것인데요. 이때는 정말 갤러리들이 한 마음으로 '아멘'을 외치며 제발 좀 공이 그린 위에 서 있기를 바랐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산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를 밀어올리고 또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이 장면은 골프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철학적인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골프의 격언 중 하나는, 전설적인 골퍼 벤 호건의 "골프는 실수로 이루어진 게임이다(Golf is a game of misses)"라는 말입니다. 골프는 원래 실수를 하게끔 되어있고, 그 실수 속에서 겸손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게임이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거나 세르히오가 오거스타를 대하는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말골퍼 여러분, 양파를 부끄러워하거나 놀리지 마세요. 진지하게 핀을 향해 도전하고 전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는 설령 그것이 셉튜플, 옥튜플이라 하더라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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