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며칠 전 모처럼 골프를 치러갔다. 무더위에, 부킹이 뜻대로 되지 않아 라운드를 잊고 지냈는데 친구가 예약된 문자를 보냈고 그 다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번개팅'은 의기투합하는 순간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를 찾아간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면서 바라본 페어웨이는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가 깎인 면에 따라 결을 달리하는 페어웨이가 헤링본 직물처럼 보인다. 잘 깎인 잔디가 펼쳐진 공간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풍경화 같다. 

구름을 비켜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이, 오늘의 라운드는 더위가 변수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티잉 그라운드 주변을 느티나무와 배롱나무가 에워싸고 있는데 붉게 피어난 배롱나무 꽃이 뜨거운 태양 아래 타고 있는 것 같다.

티 오프 전에 룰에 대해 얘기한다. 룰은 로컬 룰에 맞추고 애매한 상황이 오면 '동반자 룰'로 정리하자고 일치를 본다. 문제는 내기다. 내기의 기본은 '일1 이2'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에 '일1 이2'는 '천 원, 이천 원'을 말한다. 한 타당 천 원씩 계산하고 더블이나 트리플 이상의 스코어가 나온 경우에는 한 타당 이천 원씩 계산하는 방식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 홀로 '트리플'에 동반자가 모두 '파'를 했다고 한다면, 타당 이천 원씩에 세 타 차이로 계산하면 인당 육천 원이 된다. 결국 세 명에게 지불해야 하니 만 팔천 원이 지출된다. 

▲사진=골프한국


이렇듯 나 홀로 대형사고를 치고 나면 회복하라는 의미에서 혹은 복수하라는 뜻으로 '종을 친다'거나 '총을 쏜다'라고 표현하는 배판을 하게 된다. '이2 사4'라고 불리는 이 판부터는 한 타에 천 원이 이천 원이 되고 이천 원이 사천 원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매 샷은 예민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살피면서 조심스러워진다. 

동반자끼리 핸디 스코어가 10을 넘어가지 않는다면 가장 많이 즐기는 내기가 '일1 이2'일 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재미와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내기인 '일1 이2'가 '만 원 이만 원'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라운드를 하면서 스코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가 있다. 초보 골퍼가 한 사람 끼었던지, 그날따라 유난히 샷이 안 되는 동반자가 있으면 내기를 하다가 방법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해볼 방법 중에 '일1 이2'에 '뽑기'를 더한 방법을 권한다. 

예를 들어 나 홀로 트리플을 하고 동반자가 모두 파를 했을 경우에 '뽑기'를 해서 금액을 결정하게 되는데 뽑기 스틱에 그어진 줄로 자신이 지불할 금액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한 줄에 천 원이면 두 줄을 뽑았을 때는 이천 원이 된다. 

이 뽑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조커다. 물론 조커에는 줄이 없고 이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뽑기 스틱에서 네 줄이 그어진 것은 보통 빼놓고 하게 되는데 이는 규모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전반 라운드가 끝나고 후 핸디를 계산할 때도 타수의 차이만큼 뽑기로 결정한다. 이때는 네 줄의 스틱도 넣고 뽑아서 로우 핸디 골퍼를 괴롭히기도 한다. 마치 사다리 타기나 주사위 던지기처럼 실력보다 운으로 결정되기에 반전을 기대하는 묘미도 쏠쏠하다. 이 내기 방식은 경우의 다양성 때문에 가족과 연인끼리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언급한 '일1 이2'가 타수의 차이만큼 지불하는 일반적인 내기의 규칙으로 승부를 가린 것이라면 이 방법은 실력이 달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족한 실력을 운에 맡겨서 여한이 없도록 한다. 

많은 게임이 승자 중심의 내기로 이루어져 있고 실력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실력과 운'을 접목시킨 이 내기 방식은 '핸디캡'의 차이를 운에 맡겨야 하기에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끝나고 결산을 해보면 '스코어'차이와 '뽑기'차이가 다름에 웃게 된다.

▲사진=골프한국


내기 골프 중에는 '핸디 치기'라고 불리는 내기 방식이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자신의 핸디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친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 방식은 내기보다는 도박에 가깝다. 동반자끼리 돈을 걸고 시작하고 룰은 엄격해서 누구도 쉽게 끼어들지 못한다. 간혹 캐디가 거들다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도박으로 골프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들은 특히 퍼팅에 강하다. 짧은 거리의 퍼팅은 거의 실수하지 않고 5m 이내의 퍼팅도 쉽게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15m 이상의 롱퍼팅을 많이 연습한다. 롱 퍼팅이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골퍼는 그날의 운으로 생각하지 실력으로 믿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롱퍼팅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 세 시간 퍼팅 연습을 하고 두 시간의 어프로치, 드라이버와 아이언샷을 한 시간 정도 연습한다고 한다. 이 골퍼들의 열정과 노력은 '직업으로서 골퍼'와 '중독으로서의 골퍼'사이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단지 이 말이 둘의 차이를 구분할는지 모르겠다. '도박에서 가장 좋은 때는 집에 갈 시간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내기와 도박의 경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사실 예매하다. 예술과 외설처럼 모호한 부분이 있다. 법의 눈으로 엄격하게 보면 모두 죄가 되지만 말이다. 쐐기문자 시대에도 내기나 도박은 있었다. 인간의 본성 중에는 그것을 즐기려는 심리가 있고 의외의 결과가 주는 쾌감과 묘미는 유혹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오래된 인간의 습벽처럼 앞으로도 남아있을 것 같다.

단순히 승부를 겨루기 위해 게임을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바둑이나 당구처럼 내기를 걸어야 재미가 있는 경우가 있다. 골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최근 어떤 조사에 의하면 90% 이상이 내기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어떤 내기를 하든 동반자끼리 즐거우면 될 것이다. '명랑 골프'든 '눈물 골프'든 우리가 골프를 치는 이유는 함께하는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함일 테니까.

추천 기사: '간판스타' 박인비·김세영·박성현·전인지, 한국 여자골프 자존심 회복하나?

추천 기사: 박민지·이소미·임희정,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우승 도전 [KLPGA]

*칼럼니스트 장보구: 필명 장보구 님은 강아지, 고양이,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쓴다. 그의 골프 칼럼에는 아마추어 골퍼의 열정과 애환, 정서, 에피소드, 풍경 등이 담겨있으며 따뜻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장보구의 빨간벙커'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