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 투어에서 뛰는 이안 폴터(왼쪽). 타이거 우즈와 아들 찰리 우즈, 2021년 혼다 클래식에서 우즈의 쾌유를 기원하며 검정-빨간 패션을 선보인 팬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봄이 되자 꽃들은 줄지어 피어나고 나무도 새 옷으로 단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냇가의 버드나무도 연둣빛으로 물이 올랐고 느티나무 가로수는 새 잎이 허공에 매달린 모빌처럼 가지 끝에 떠 있습니다. 

야산이나 도로가에서 흔히 보이는 오리나무가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골퍼처럼 겨우내 달고 있던 까만 방울 사이로 순한 연두색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오는 골프장은 변하는 풍경으로 매일 새로워집니다.

잔디는 이제 발아하는 씨앗처럼 싹을 내밀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다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가 좋아 골퍼를 유혹합니다. 이 시기의 골프장 환경은 사실상 최악입니다. 그린은 구멍을 뚫기도 하고 모래를 뿌려서 적정한 스피드를 기대할 수 없고 페어웨이 역시 털갈이하는 동물처럼 푸석거리고 어떤 곳은 객토하듯 파헤쳐 놓은 곳도 있습니다. 

골프가 룰을 중요시하는 운동이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 '룰'을 논한다면 야박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좋은 곳에 놓고 치세요'라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배려를 말하는 이유는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계의 소중한 울타리를 감싸고 있는 관심과 배려, 이해나 공감 같은 말은 골프장 관계자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최근 골프장은 그린피를 올리다 지쳐서 카트비를 올리는 실정이니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혹시 '페어웨이 관리비'라고 새로운 명목을 붙여 비용 올리기를 시도하지 않을까 지켜볼 일입니다.

올해도 골프장은 예약은 어렵고, 비용은 비싸고, 서비스는 열악한 상태로 갈 것 같습니다. 골퍼와 골프장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코로나19가 끝나야 할 이유로 해외여행을 꼽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갑질하는 국내 골프장을 떠나 대접받는 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골프장에서 동물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미를 따르는 오리가족이나 병아리처럼 다리가 짧은 꿩 식구가 줄지어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어떤 홀에서는 캐디가 주는 과자나 견과류 따위를 받아먹기 위해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까치도 있습니다. 캐디가 던져주는 과자를 너무나 능숙하게 부리로 물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까치의 지능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까치는 흰색과 검은색의 배색 때문에 그리고 긴 꽁지깃으로 인해 연미복을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까치가 우리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데는 까치의 지능과 더불어 흑백이 대비를 이루는 깔끔한 색상도 일조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골프웨어에도 까치처럼 무채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층의 유입으로 인해 골프웨어도 색상의 변화를 꾀하는가 봅니다. 의류의 색상은 대체로 젊을수록 무채색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유채색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골프 브랜드가 알록달록하고 형형색색으로 단장된 옷을 선보였다면 최근의 트렌드는 CLEAN&SIMPLE과 기능성 원단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여러 가지 색상보단 블랙과 화이트를 메인 색상으로 가면서 블루나 레드 혹은 형광색 같은 보조 색상으로 단조로움을 피해 가는 것 같습니다.

골프선수 중에 옷 잘 입는 선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안 폴터'를 첫자리에 세우고 싶습니다. 물론 '리키 파울러'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자신의 옷 브랜드 '이안 폴터'의 디자인도 참여한다는 그의 패션 감각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특히 그는 체크를 잘 소화합니다. 

솔리드 배색은 정돈이 조금은 쉽습니다. 보색 대비, 채도 대비, 명도 대비처럼 미술시간에 배운 색상의 대비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색상을 배열하거나 정돈할 수 있습니다. 옷가게의 패션 어드바이저들이 흔히 쓰는 'tone on tone'이란 방법도 참고해 볼 만합니다. 이 방법은 색상을 겹친다는 말처럼 비슷비슷한 색상끼리 모아서 통일성을 주기 때문에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체크는 응용이 필요하고 옷을 소화할 만한 모델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다시 말해 옷을 입을 사람의 비주얼이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안 폴터'는 자신이 입은 옷을 빛나게 하는 능력이 충분해 보입니다. 옷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표정과 몸짓에서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는 입고 있는 옷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안 폴터'가 체크무늬로 연상된다면 검정 바지와 빨간 티셔츠는 타이거 우즈를 대변합니다. 요즘 말로 '검빨'로 불리는 그의 복장은 색채 심리학에서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빨강과 검정은 '경고나 정지 혹은 출입금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드레스 코드에서 '검빨'은 '황제'를 의미합니다. 

얼마 전 타이거 우즈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많은 선수들이 '황제'의 쾌유를 빌면서 '검빨'을 드레스 코드로 하고 경기를 했습니다. 수많은 '황제' 복장은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먼 훗날, 위대한 구기종목 선수의 백넘버를 영구결번 하듯이 '검빨'은 골프 드레스 코드의 영구결번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초봄의 골프 스코어는 잘 차려입은 복장만큼, 주변의 풍경만큼 화려하지 못합니다. 새싹을 틔우는 잔디의 여린 연두색깔이 아가의 손처럼 곱다고, 지고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진정한 골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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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장보구: 필명 장보구 님은 강아지, 고양이, 커피, 그리고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쓴다. 그의 골프 칼럼에는 아마추어 골퍼의 열정과 애환, 정서, 에피소드, 풍경 등이 담겨있으며 따뜻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장보구의 빨간벙커'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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