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15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개최된 디 오픈 챔피언십의 모습이다. 갤러리들(상단)과 타이거 우즈(하단).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날씨의 변화가 있을 때나 계절이 바뀔 때면 바람이 붑니다. 소설도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어김없이 바람이 붑니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훈풍 같던 바람이 차갑게 돌아선 연인처럼 냉랭한 기운을 귓가로 보냅니다. 

농가 쪽으로 차를 몰고 왔는데 길가의 대나무 숲이 일제히 한쪽으로 몰리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놀이기구 타는 애들처럼 한쪽으로 쏠리자 아우성을 지르는 소리가 차 안으로 전해집니다. 탱자나무 가지에 탱글탱글 달려있는 아이들 주먹만 한 탱자는 대나무가 흔들릴 때 내는 소리 때문인지, 대나무 잎의 짙은 초록 때문인지 더 샛노래졌습니다.

이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얼마 전 007 시리즈의 원조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가 사망했습니다. 영화 속의 제임스 본드는 항상 자신의 이름을 밝힐 때면 "본드, 제임스 본드"하며 무심한 듯 거만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영국 첩보국의 스파이로 등장합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말끔한 슈트 차림에 최신형 자동차를 타는, 그의 캐릭터는 스파이 영화의 전형이 되었고 아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향년 90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GBR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영국'이라고 말할 때는 위 네 곳을 하나로 보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합쳐서 부를 때는 GBR, UK이라고 부르고 국기도 유니온 잭을 쓰기도 하지만 각각의 자치국으로 불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월드컵 때는 네 나라가 독립적으로 출전합니다. 외교적으론 하나의 나라지만 내부적으론 자신들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오랜 전쟁을 치렀고 그 긴 기간의 대립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는 백파이프, 스카치위스키, 타르탄 킬트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골프의 고향인 '세인트 앤드루스 링스 코스'가 있습니다. '골프의 성지'인 스코틀랜드 링스 코스에서는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 '디 오픈(THE OPEN)'이 열립니다. 

▲사진은 2010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개최된 디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올해 제149회 디 오픈 챔피언십 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되었지만, 해마다 명승부가 펼쳐졌습니다. 특히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날 골프클럽'이 오래된 나무와 깔끔하게 정돈된 인공의 느낌이라면, 디 오픈이 열리는 세인트 앤드루스의 링스 코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골프장은 해변을 끼고 펼쳐진 홀들이 바다와 맞닿기도 하고 오랜 시간 바람이 만들어 놓은 듯 원시적인 느낌을 줍니다.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하루에 사계절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햇볕이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고 그 비가 눈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여주는데, 스코틀랜드에 전해오는 골프에 관한 말 중에 '바람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는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스코틀랜드의 바람은 일상과 골프에서 늘 함께하는 것이 되었고 골프의 시작과 끝에는 늘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바람은 골프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날씨는 단조로운 일상을 다채롭게 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어야 하고 눈이 오면 두꺼운 외투를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추억을 소환하고 떠올리게 합니다. 

바람이 목 언저리를 스치면 남쪽 끝에 있는 링스 코스가 생각납니다. KLPGA 대회도 하면서 골퍼들에게 많이 알려진 골프 코스였는데 바람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갈대가 어우러진 홀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고 바람에 날린 갈대꽃은 지는 햇빛에 눈처럼 흩어지곤 했습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오리 떼는 군무를 펼치며 멋진 장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바람은 아마추어 골퍼에겐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하게 합니다. 매 샷마다 예측하기 힘들게 하고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자신의 샷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골프는 확신이 없을 때 실수를 합니다. 바람은 때로 그 확신을 여지없이 뭉개기도 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 눈치 빠른 캐디는 거리를 불러주고 마지막엔 꼭 그 말을 합니다. 
"바람 따로 계산하세요."

프로들은 바람이 부는 날 낮은 탄도의 샷을 합니다. 타이거 우즈도 스코틀랜드 링스 코스에서 티샷을 아이언으로 하고 굴려서 그린에 올려놓습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바람을 잠재우고 샷을 할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 <활>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바람은 계산도 극복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순간의 지혜를 발휘하게 하고 임기응변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바람 부는 날 골퍼는 바람 탓을 합니다. 책임을 전가하고 편해진다면 그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바람은 골퍼에겐 숙명입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바람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고 말하듯이 골퍼는 자연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됨을 만끽하는 것이 골프가 주는 축복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바람은 편서풍을 타고 에든버러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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