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 골프대회에서 단독 2위를 기록한 이재경 프로. 사진제공=KPGA


[골프한국] 골프를 처음 접했을 때 '골프는 민주적인 스포츠'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때 들으면서 '무척 대단하구나'하는 생각과 한편으론 '별 시답잖은 소리로 포장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후로 '골프는 민주적이다'는 메타포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지난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2020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김태훈 선수가 우승하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 날, 김태훈 선수는 4타 차의 여유가 있었지만 파이널 라운드와 챔피언 조에 쏠리는 기대와 압박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서 마지막 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2위와 2타 차이로 마무리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추격한 선수는 1999년생 이재경 선수였다. 

아직 풋풋해 보이는 앳된 얼굴의 이재경 선수는 아마추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몇 년 전 학생 때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챔피언조에서 경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KPGA의 촉망받는 신인으로 성장한 이프로를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골프는 민주적인 스포츠'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며칠 전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는 김세영 선수가 우승을 했다. 

LPGA 5년차로 11번째 우승을 메이저 대회로 차지해서 그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날이면 입었던 빨간 바지는 뉴스거리로 풍성한 헤드라인을 제공한 것 같다. 

빨간 바지는 그녀가 마지막 날이면 입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여러 번의 우승은 '빨간 바지의 마법'이나 '역전의 빨간 바지'로 불리면서 그녀를 상징하게 되었다.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김세영 프로와 경쟁한 안나 노르드크비스트. 사진제공=Darren Carroll/PGA of America

챔피언 조에서 '빨간 바지'를 입고 걷는 김세영 선수와 안나 노르드크비스트 선수를 보았다. 그런데 두 선수의 신장 차이 때문이었을까? 문득 '만약 두 선수가 농구나 배구 시합에서 마주하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뻔했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나를 일깨우는 '골프는 민주적이다'라는 생각에 빠진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경기다. 플레이어 스스로 스코어를 작성하고 룰 적용도 스스로의 양심에 맡긴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적'이란 표현을 쓰는 것 같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선수와 심판을 구분하고 심판의 결정으로 승부는 판가름 난다. 골프의 룰에는 자율성이 있는데 선택은 선수의 몫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자율성의 보장은 경기가 끝난 후 책임을 묻기도 한다. '골프는 민주적이다'는 얘기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자유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민주주의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골프는 장비가 다양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한 가지 도구를 사용하는 운동이 아니다. 골프백에는 14개의 클럽을 넣을 수 있는데 모두 다른 특징이 있고 사용법 역시 다르다. 이 다양한 장비를 다루기 위해선 견실한 체격과 강인한 체력 그리고 섬세함과 집중력, 통찰력이 필요하다. 

골프는 육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을 함께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스포츠다. 한 가지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골프대회 챔피언 조에서 우승 경쟁한 김세영 프로, 브룩 헨더슨, 안나 노르드크비스트. 사진제공=Darren Carroll/PGA of America

스포츠에서 신체적 우월함은 절대적일 때가 많다. 앞서 언급한 '높이의 경기'에서 키는 절대적 조건일 것이다. 빠른 스피드와 유연성 그리고 강인한 체력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아서 훈련이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각의 링이나, 네트로 절반을 나눠서 공정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보고 있으면 체격과 체력의 극명한 차이를 느끼곤 한다. 그 조건들은 실력보다 먼저 나타나는 것 같다.

골프는 신체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을 장비로 보완해 주기에 '민주적'이다.

골프가 민주적인 이유를 나이, 신체조건, 장비의 다양성으로 가늠해 보았다. 시간이 흘러 골프에 대한 깊이가 깊어질수록 또 다른 이유가 생겨날지 모른다. 내게 '골프가 민주적이다'라고 일러준 분은 나보다 더 깊은 세계에서 사유하고 노력하셨을 것이다. 

'골프는 민주적인 스포츠'인 이유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골프는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그래서 '골프는 민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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