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극락조.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다리 없는 새가 있어. 다리 없는 새는 한없이 날기만 해. 날다가 지치면 그대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을 자지. 그 새가 평생 한 번 땅에 내려오는데 그날이 죽는 날이야."

지금은 전설이 된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의 대사였습니다. 이 근사한 대사는 창작에 많이 인용되기도 하는데, 바로 다리 없는 새 때문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창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극락조'라는 새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로 'bird of paradise'(천국의 새)라고 합니다.

파푸아 뉴기니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 새는 아름다운 깃털로 유명합니다. 새의 깃털은 염료가 나오기 전 인간이 유일하게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색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확실한 액세서리였을 겁니다. 

특히 45종에 이르는 극락조의 깃털은 에메랄드나 터키석의 푸른빛, 선홍빛, 황금빛 등으로 다양할 뿐 아니라 선명하고 아름다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불렸습니다. 이중 검정 깃털은 지상에서 발견된 가장 완벽한 검정에 가깝다고 합니다. 온몸이 검정 깃털로 된 극락조는 빛의 반사가 거의 없어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평면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깃털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극락조는 모두 수컷인데 이 아름다움의 비밀은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먼저 바닥의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치우고 무대를 정리합니다. 암컷이 잘 보일만한 곳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춤을 연습합니다. 관심을 보이는 암컷이 있으면 본격적으로 깃털을 오므렸다 펴고 스텝을 밟으며 춤사위를 보여 줍니다. 두발로 걸으면서 날개를 오므렸다 펴는 새의 춤은 경이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리사이틀은 극락조에게 선택의 순간입니다. 암컷에게 자신을 자랑하며 개체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순간이고 천적에게 노출되는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순간에 사로잡힌 새들은 깃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해 다리가 잘립니다. 마치 화병에 꽂힐 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극락조는 다리 없는 새로 탄생하게 됩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거는 '극락조'를 보고 핸디캡 이론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동물 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주장한 진화 생물론은 " 최고의 수컷만이 핸디캡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조류학자 리처드 프럼은 "적에게 잡혀 죽을 위험이 있더라도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핸디캡 이론이 말하는 상황의 극복은 골프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자연이 주는 환경과 홀이 만들어 놓은 핸디캡은 골퍼가 극복해야 할 숙명 같은 것입니다. 

규정타수를 정해놓은 상태에서 줄이기 게임을 하는 골프는 1타를 줄이는 것(-1)을 버디라고 합니다. 2타를 한 번에 줄이는 것(-2)은 이글이고 3타를 줄이면(-3) 앨버트로스라고 합니다. 버디는 bird에서, 이글은 eagle, 앨버트로스 역시 가장 크고 멀리 나는 새를 말합니다. 핸디캡을 줄이는 산술 용어를 새의 이름으로 호칭한 걸 보면 골프는 인문학적인 운동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핸디캡을 줄이기 위해서는 타수를 줄여야 하는데, 주말골퍼에게 앨버트로스나 이글은 평생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면 버디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버디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만, 누구에게나 첫 버디는 있습니다. 

'내 인생 첫 버디'라고 공을 보관하기도 하고 동반자들과 축하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디를 하면 드라이버나 모자에 나비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하고 나비모양의 핀이나 브로치도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스코어 카드에는 나비모양의 스티커를 부쳐 버디를 축하해 줍니다. 그 스코어 카드를 보관한 적도 있었습니다.

▲상단 사진은 2017년 아틀랜틱 비치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PGA 웹닷컴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18번홀에서 나비가 홀컵에 들어간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그런데 버디를 했는데 왜 나비를 그려주고 나비 스티커를 붙여 줄까요? 

물론 스크린 골프에서도 버디를 하면 홀에서 나비가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많은 분들께 물어보고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아무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공통된 답은 캐디가 팁으로 받은 버디세(?)에 대한 선물로 준비한 액세서리의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버디를 하면 나비 스티커가 아니라 볼마커나 티를 주는 것을 보면 맞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버디와 나비에 대한 저의 추론은 이렇습니다. '버디는 골프의 꽃'입니다. 나비는 꽃피는 봄날 날아오릅니다. 푸른 잔디를 걷다가 춤추듯 날아가는 나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푸른 잔디에 앉아서 쉬고 있는 나비는 꽃잎처럼 예쁩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이는 날개는 색깔마다 곱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왕나비'는 바다를 건너 육지까지 온다고 합니다. 바다를 건너는 나비 떼는 생각만으로 감탄이 나옵니다. 연약한 날개로 바람에 기댄 채 망망대해를 헤엄치듯 날아가는 나비 떼는 장관일 것 같습니다. 언젠가 바다를 날아가는 나비들을 만난다면 힘차게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 '왕나비'는 7~8월에 육지에서 목격된다고 합니다.

분명한 건, '나비'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가벼워진다는 것입니다. 버디 했을 때 터져 나오는 환희의 순간을 감추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주먹을 힘껏 쥐며 환호하거나, 깡충 뛰면서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이 기분 좋은 상태를 표현하기엔 나비가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춤추는 나비는 날아갈 것 같은 감정의 표출이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새보단 나비가 그리기도 쉬웠을 것 같습니다. 하트 문양과 나비 문양은 쉽게 그려질 테니까요.

'호접몽'에서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 꿈을 깬 뒤에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라는 이 말은 버디를 노리는 순간에 꼭 필요한 말입니다. 공과 내가 하나가 되는 집중으로 혼연일체의 순간을 경험한다면 나비는 홀에서 날아오를 겁니다.
 
나비 꿈은 길몽이라고 합니다.
라운드 전날 나비를 생각하고 잠들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코어 카드에서 나비 떼가 날아가는 날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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