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대회인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이 열린 베이힐 클럽 앤 로지 페어웨이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는 매(레드 테일드 호크).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모로코에서는 사냥새로 쓰기 위해 매를 잡는데 매우 독특한 방법을 쓴다. 먹잇감을 묶어놓은 뒤 그 위에 그물을 쳐두고 사람은 땅굴 속에 숨어 기다린다. 먹이를 발견한 매가 날아와 먹이를 낚아채려다 먹이가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한번 맛을 본 매는 먹이를 포기하지 못한다. 

사람이 다가와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별수 없이 그물에 갇히고 마는 매는 사람 손에 길들여져 다른 새나 토끼 등을 잡는 사냥매로 살아간다. 눈앞의 이익이나 향락에 빠지면 위험이 다가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함을 일깨워준다. 

K는 골프에 관한 한 수준에 올랐다고 자부해왔다. 세 번에 한번 싱글 스코어를 기록할 정도로 안정된 플레이를 펼치는 기량을 갖추었고 골프에 대한 열정도 남 못지않았다. 필드에 나갈 때마다 신기록의 꿈을 꾸는데 용케도 그 꿈은 자주 실현되었다.

이런 K가 신기록을 눈앞에 두고 파5의 16번째 홀을 맞았다. 15홀까지의 스코어는 1오버파. 앞으로 남은 3홀을 보기플레이만 해도 자신의 최고기록인 6오버파를 깰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의 컨디션이라면 세 홀에서 모두 보기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에게 새로운 신기록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신기록을 꿈꾸며 날린 드라이버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났다. 볼은 나무 뒤에 떨어져 정상적인 샷이 불가능했으나 거리 손해를 감수하면 보기는 무난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드레스를 한 그의 시야에는 드넓은 페어웨이가 들어왔다. 펀치 샷을 잘 하면 좋은 위치에 볼을 갖다 놓을 수 있고 3온도 가능해 보였다.

‘현재 1오버파니 남은 세 홀에서 버디를 하나 낚으면 꿈에 그리던 이븐파도 가능하다. 이븐파를 기록하려면 이번 홀에서 보기는 곤란하다. 모험을 해보는 거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한참 생각 끝에 K는 힘찬 샷을 휘둘렀다. 결과는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클럽이 나무에 걸려 샤프트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볼은 30야드밖에 굴러가지 못했다. 성공할 경우만 가정했지 실패할 경우를 가정하지 않는 바람에 초래한 참화였다.

그 홀에서의 스코어는 트리플보기. 나머지 두 홀도 겨우 보기와 더블보기로 이어졌다. 여유 있게 달성할 수 있었던 신기록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무모한 모험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성공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덤벼드는 골퍼는 모로코의 매와 무엇이 다른가.

필드에선 전진보다는 후퇴가 더 유용한 때가 자주 있다.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 무모한 모험을 하기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상황을 고려, 안전지대로 후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후 K는 무모한 욕심이 일 때마다 골프채를 부러뜨린 그 순간을 떠올리며 무모한 모험에 이끌리려는 유혹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골프채를 부러뜨리고 귀중한 교훈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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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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