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루키 송가은 프로와 준우승한 이민지가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KLPGA
[골프한국] 프로골프의 세계는 철저하게 실력이 지배한다. 가끔 행운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상위 포식자들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골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Anything can happen in golf.)’는 금언도 통한다. 지난주 열린 KPGA 코리안투어와 KLPGA투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경기도 여주 페럼클럽(파72)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호스트인 한국 골프의 ‘지존(至尊)’ 최경주(51)가 컷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PGA투어 통산 8승에 최근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열린 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베른하르트 랑거와 알렉스 체카(이상 독일) 등 강자를 물리치고 챔피언스투어 첫승을 올리며 한국 골프의 전설이 된 최경주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대회에서 1타 차로 컷을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최경주는 챔피언스투어 대회를 마치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내심 챔피언스투어 첫 승의 기세를 살려 이번 대회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었다. 우승은 못하더라도 살아있는 전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 ▲2021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한 최경주 프로. 사진제공=KPGA
그런 그가 컷 탈락했다. 그것도 평생 한 번 하기 힘든 실수.
그는 첫날 2오버파를 치고도 자신의 실수로 스코어 카드에 3오버파로 적어 제출했다.
16번 홀(파3)에서 그는 파를 했다. 스코어를 기록하는 마커인 박성국은 제대로 3타로 적었으나 최경주가 3타가 아니라 4타라며 수정했다. 착각했던 것이다. 그는 스코어카드에 사인해 경기위원회에 제출했다.
골프에서 스코어카드는 실제보다 적게 적으면 실격이고, 많이 적으면 그대로 인정된다. 실제 그의 첫날 스코어는 74타였는데 75타가 된 것이다.
최경주는 2라운드에서 3타를 줄이며 선전했으나 1타 차이로 컷(1언더파)을 넘지 못했다. 착각에 따른 뼈아픈 실수가 초래한 참사다.
그럼에도 그는 대회장을 떠나지 않고 호스트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함정우(27)의 우승을 지켜봤다.
최경주는 쉴 틈도 없이 4일 출국, 오는 9일 개막하는 챔피언스투어 콘스텔레이션 퓨릭&프렌즈에 출전한다.
3일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CC에서 열린 KLPGA투어 메이저급 대회인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루키 송가은(21)이 연장전 끝에 호주교포 이민지(25)를 꺾고 정규투어 첫승을 신고했다.
-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준우승한 이민지 프로. 사진제공=KLPGA
아마추어 시절 US 주니어 챔피언을 거친 이민지는 호주를 대표하는 선수다. 올해 메이저대회인 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을 비롯해 LPGA투어 통산 7승을 올린 월드클래스다. 세계랭킹 7위에 올라 있다.
이에 비하면 송가은은 세계랭킹 161위로 ‘하룻강아지’나 다름없다.
2019년 KLPGA투어 회원이 된 그는 2020년 2부인 드림투어를 거쳐 올해부터 정규투어에 뛰기 시작했다.
올 시즌 23개 대회에 참가해 5번 컷 탈락했다. 지난 4월의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스2021 대회에서 5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곤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13언더파의 이민지에 한 타 뒤진 12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오른 송가은과 김수지(24)가 챔피언조로 엮인 것부터가 이변이었다.
객관적인 기량으로 보면 송가은이나 김수지를 능가하는 실력자가 즐비하다. 세계랭킹 9위 리디아 고를 비롯해 박민지, 장하나, 유해란, 최혜진, 임희정, 박현경 등 세계랭킹 50위 안에 포함된 선수들이 우승 경쟁을 벌일 후보들이 즐비하다.
-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우승한 송가은 프로. 사진제공=KLPGA
의외의 챔피언조였다.
이민지는 자신만만했고 노련미를 풍겼다. 송가은과 김수지는 세계적인 선수에 맞서 다소 긴장하는 듯했다. 특히 단신(161cm)에 신인 티를 숨기지 못하는 송가은은 챔피언조에서 경기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라운드 중반을 넘기면서 이민지가 2타 차 선두를 유지하며 무난히 우승하는 듯했으나 ‘하룻강아지’ 송가은은 이민지를 범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민지가 2타를 줄이는 사이 송가은은 3타를 줄여 최종합계 15언더파 269타로 연장에 돌입, 세 번째 홀에서 송가은이 버디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민지는 여독 탓인지 빨리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생각에 서두르는 듯했고 송가은은 이 틈을 노려 신인답지 않게 저돌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세계랭킹 161위가 7위를 잡는 이변이 일어났다. ‘골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금언을 증명했다.
올 시즌 KLPGA투어 신인으로선 첫 우승이다. 우승 상금 2억7,000만원도 그의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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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