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가 자립독행(自立獨行)의 스포츠라고 하지만 캐디 도움 없이 온전한 라운드를 하기는 어렵다. 골프의 본고장인 영국이나 미국에선 캐디 없이 라운드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사정이 다르다.

최근 노캐디 제도를 도입하는 골프장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캐디 없는 라운드는 먼 얘기다.

주말골퍼들은 항상 캐디의 도움을 받으며 라운드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캐디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카트에서 내릴 때 손수 몇 개의 클럽을 뽑아가면 될 것을 볼이 있는 곳까지 가서야 캐디에게 거리를 묻고 클럽을 갖다 달라고 소리친다. 그린에 올라와서도 서둘러 마크할 생각은 않고 캐디가 마크하고 볼을 닦아 라인을 맞춰 놓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특히 미스 샷이 발생했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캐디에게 돌리는 골퍼도 적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 캐디만큼 유능한 캐디를 구경하기 어렵다. 
한 홀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의 캐디들은 동반자 4명의 스윙 습관과 비거리 등을 정확히 파악한다. 거리나 방향을 일러주는 것 외에 현 상황에서 필요한 클럽을 뽑아주고 샷하고 난 뒤엔 클럽페이스까지 닦아준다. 먼 데서 몇 번 클럽 갖다 달라 하면 열심히 갖다 주어야 하고 공이 해저드에 들어가면 새 공을 갖다 주는 것도 캐디 몫이다.

특히 그린에선 퍼팅하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짐을 캐디가 짊어진다. 볼 닦는 일, 볼 마크를 하는 일, 그린 보수하는 일까지 캐디에게 맡긴다.

그러고도 질문 공세가 뒤따른다. 좌우 어디가 높으냐, 내리막이냐 오르막이냐, 어디를 보고 쳐야 하느냐, 라인은 잘 맞춰 볼을 놓았느냐는 등 질문을 퍼붓고는 정작 스트로크를 할 때는 캐디가 일러준 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볼이 홀을 벗어나면 캐디 탓으로 돌린다.
심한 경우 캐디의 언행이 못마땅하다며 중도에 캐디를 교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처럼 지나치게 캐디에 의존하는 습관은 캐디의 본질을 잘못 인식한 데서 비롯됐다고 봐야 하겠다. 

캐디(caddie)라는 어원은 프랑스 귀족의 젊은 자제를 뜻하는 카데(cadet)에서 비롯됐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여성 골퍼인 스코틀랜드의 메어리 여왕이 1562년 여름 두 번째로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해 골프에 열중하는데 이때 프랑스에서 데려온 젊은 장교들을 경기 도우미로 대동하면서 캐디가 처음 탄생했다.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맥콜모나파크 오픈 1라운드 때 캐디 없이 경기해 화제를 모았던 김해림 프로. 사진제공=KLPGA


캐디는 그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디까지나 경기 보조자다. 캐디가 유능한가 아닌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플레이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라운드를 하는 골퍼이고 모든 판단과 결정, 그에 따른 결과는 골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캐디의 역할이나 몫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 특정 골프장을 간헐적으로 찾는 골퍼와 한 골프장에서 몇 년씩 근무하는 캐디와는 정보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초보 캐디가 아닌 이상 캐디의 말은 절대적인 정보이자 지상명령이나 다름없다. 캐디로부터 얼마나 유익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라운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캐디를 단순히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로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물론 캐디피를 받으니 당연히 그런 의무가 있지만 4명을 상대해야 하는 캐디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도움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캐디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캐디로부터 귀중한 도움을 얻는가 하면 적대관계로 변해 라운드 전체를 망치는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40여년에 달하는 구력을 더듬어보면 골프장에 도착해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캐디와 대면하는 순간 그날 라운드의 성패는 결정 난다고 믿는다.

골퍼와 캐디와의 관계에는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giva & take)’ 원칙이 적용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주는 만큼 받는다고 보면 틀림없다.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씨, 앞에 보이는 벙커까지는 얼마나 되지요?”하는 묻는 골퍼와 “왼쪽이 안전하다고 했으니 그쪽으로 쳤는데 OB 나면 언니가 책임져!”라고 말하는 골퍼 중에 누가 캐디의 호감을 사겠는가.

“어프로치는 주로 뭘 사용하세요?”하고 묻는 캐디의 질문에 “주로 P S를 쓰지만 그때그때 다를 수도 있어. 현장에서 말해줄 게.”하는 골퍼와 “주로 A P를 쓰지만 내가 직접 뽑아갈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하고 말한 골퍼 중에 누가 캐디를 편하게 해주겠는가.

고수 골퍼는 캐디로부터 도움을 적게 받고 많은 도움을 준다. 처음부터 “○○○씨, 클럽은 내가 직접 챙길 테니 다른 분들한테 신경 쓰세요.”라고 말해 캐디의 긴장을 풀어주고 실제로 샷을 하는데 필요한 클럽을 직접 여러 개 뽑아 카트에서 내리고 샷을 하고 나서도 스스로 골프백에 집어넣는다.

한 수 더 높은 골퍼는 자기 할 일을 자기가 함은 물론 캐디가 할 일까지 대신해준다. 클럽을 대신 갖다 주는가 하면 동반자의 볼이 러프로 날아가면 캐디가 신경 쓰기 전에 달려가 볼을 찾아준다. 그린에서도 동반자의 볼 마크를 대신 해주고 벙커를 정리해주는가 하면 남이 손상시킨 그린도 손수 보수한다. 볼도 캐디가 닦아주기 전에 손으로 쓱쓱 문지르곤 라인을 맞춰 놓는다. 어찌 캐디가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품위 있는 말투에 신사적인 매너까지 갖췄다면 캐디에겐 최고의 고객이다.

▲타이거 우즈와 신뢰를 쌓아온 캐디 조 라카바. 사진은 2020년 12월 PNC 챔피언십에 참가했을 때 우즈의 아들 찰리와 동반한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캐디의 짐을 덜어주고 편하게 해주니 캐디가 가만히 있겠는가. 모든 것을 캐디에게 의존하는 골퍼라면 좀 짜증스럽고 불편하고 게으름도 피우고 싶겠지만 제 몫의 캐디피 내고 캐디를 이렇게 편하게 해주는 손님에게 모른 척할 수 없다.

캐디의 보상은 결정적일 때 주어지기 마련이다. 라이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그린 위에서나 착각하기 쉽거나 위험이 숨어있는 코스에서 캐디는 결정적 도움을 준다.
이런 식으로 캐디와 궁합이 맞으면 그날의 라운드 결과는 물으나 마나다.

반대로 티잉 그라운드에서 주머니에 티가 없어 캐디에게 티를 달라고 하고, 카트에서 내릴 때 빈손으로 내리고, 현장에 가서 거리를 물어본 뒤 클럽을 갖다 달라고 소리치고, OB를 내거나 해저드에 볼을 빠뜨린 뒤 여분의 볼도 없어 캐디에게 볼을 가져오라고 고함치고, 볼 마크도 안 가지고 다녀 캐디가 마크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린 위에서 물은 것 또 묻고, 설명을 다 듣고도 엉뚱한 스트로크를 해버린 뒤 그 탓을 캐디에게 돌리는 골퍼의 라운드 결과도 물으나 마나다.

물론 유능한 캐디도 적지 않다. 단순히 거리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 볼이 어디로 가면 위험하다든가, 어느 지점이 두 번째 샷을 날리는 데 유리하다든가 간파하기 힘든 정보를 일러주고, 바람의 세기나 경사에 따라 클럽을 어느 정도 길게 혹은 짧게 잡아야 하는지 힌트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플레이어의 스윙과 스탠스을 보고 구질을 재빨리 파악,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언을 해주는 캐디도 있다.

좀더 유능한 캐디라면 플레이어가 나쁜 스코어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을 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말을 해주고, 흥분해서 경기를 망칠 위험이 있을 때 침착하게 임할 수 있도록 슬쩍 경계의 한마디를 던지는 지혜를 발휘한다.

흔치는 않지만, 한두 홀을 지나자마자 골퍼들의 클럽별 비거리를 금방 파악해 클럽을 챙겨주고 스윙의 버릇을 간파해 스탠스 방향을 조정해주는 유능한 캐디를 만날 수도 있다. 캐디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서 행동이 조신하고 말투가 상냥하며 손님들의 짓궂은 농담도 지혜롭게 받아넘겨 상황을 정리해주는 캐디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유능한 캐디를 만날 확률이 낮다면 캐디의 유익한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어 성공적인 라운드를 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비법이 바로 캐디의 짐을 덜어주고 캐디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길이다. 이 비법은 또한 자립독행하는 골프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골프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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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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