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에 출전한 임성재 프로가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신(神)들의 골프 경기가 이랬을까?
30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오윙스 밀스 케이브스 밸리GC(파72, 7542야드)에서 막을 내린 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차전 BMW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는 신(神)들의 세계에서나 벌어질 일들이 속출했다.

신들이 잠시 지상으로 내려왔든가, 인간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일이 아니고선 보기 어려운 골프의 진수(眞髓)들이 펼쳐졌다.

우선 이 대회에 참가한 70명의 선수들이 지구촌의 ‘골프 신’들이다. 
지난 1년 동안 누적된 페덱스 포인트 상위 125명이 사실상 올 시즌 PGA투어 총결산의 시작인 플레이 오프 1차전 노던 트러스트 대회를 거치면서 70명으로 압축되었다.

이들은 거액의 상금(총상금 6,000만달러, 약 710억원)과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1,500만달러(약 178억원)의 ‘황금 보따리’를 탐하며 케이브스 밸리의 들판에 섰다. 
지구촌 ‘별들의 전쟁’이었다. 골프 신들의 ‘쩐의 전쟁’이었다.

대회 성적과 이 성적을 페덱스 포인트로 환산해 매긴 순위가 달라 일반 골프 팬들은 다소 혼란스러움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들이 약속한 페덱스 포인트에 의한 플레이오프 순위 매김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제도임은 확실하다. 한 시즌을 총결산하는 플레이오프이니 잠깐 반짝하는 선수보다는 꾸준하게 실력을 발휘한 선수에게 많은 상금이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다.

사흘간 치러진 모든 라운드,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가 긴장감 넘쳤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의 패트릭 캔틀레이(29)와 브라이슨 디섐보(27)의 연장전은 압권이었다.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에서 브라이슨 디섐보와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패트릭 캔틀레이.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흘 내내 엎치락뒤치락하며 선두경쟁을 벌여온 캔틀레이와 디섐보는 영락없이 다윗과 골리앗이었다.

178cm 72kg의 캔틀레이의 골프는 조용하고 단아하다. 엄청난 장타는 아니지만 정교한 샷을 자랑하고 소리소문없이 스코어를 줄여나가는 스타일이다. 2012년 2부 투어인 콘페리투어를 거쳐 2014년부터 PGA투어에서 뛰기 시작해 통산 4승을 올렸다. 

이에 비해 185cm 106kg의 디섐보는 자타가 인정하는 헐크다. ‘필드의 물리학자, 철학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끊임없이 프론티어다. 2017년 PGA투어 데뷔 첫해부터 우승을 시작으로 매년 우승을 보태 통산 8승을 올렸다.

디섐보가 덩치만 크고 우둔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고 조용한 캔틀레이와 대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골리앗의 이미지를 준다.

최종 라운드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선두 경쟁을 벌인 두 선수는 마지막 홀을 마치고도 공동 선두(27언더파 261타)가 되어 연장전에 나서 좀처럼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 여섯 번째인 18번 홀(파4)에서 캔틀레이가 5m가 넘는 버디 퍼팅을 성공시켜 플레이오프 랭킹 1위로 최종 3차전 투어챔피언십에 나서게 됐다.

캔틀레이는 오는 3~6일(한국시간) 조지아주 애틀래타 이스트 레이크GC에서 열리는 투어챔피언십에서 10언더파를 미리 안고 출발,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임성재 프로가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 1, 2라운드에서 로리 매킬로이, 빌리 호셜과 동반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이런 신들의 경기에서 3위에 오른 임성재(23)의 성취는 경이롭다. ‘한국 남자골프의 제다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지구촌 골프의 신들이 모인 들판에서 임성재는 두드러졌다. 사흘 내내 리더보드 상단을 벗어나지 않았다. 최종합계 23언더파 265타로 패트릭 캔틀레이, 브라이슨 디섐보에 이어 3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이미 신의 반열에 올랐음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가장 좋은 성적은 낸 선수는 최경주로, 2011년 공동 3위에 올랐다. 
최경주는 투어 챔피언십과 인연이 깊다. 2007년 한국선수 처음으로 최종전에 진출, 공동 2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9년 9위, 2010년 공동 7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양용은이 2009년 18위, 2011년 29위, 배상문이 2015년 공동 18위, 김시우가 2016년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임성재는 2019년 공동 19위, 2020년 11위에 들어 한국선수 처음으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경훈(30)은 공동 12위(17언더파 271타)로 선전했으나 플레이오프 순위 31위로 아쉽게 최종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시우(26)도 공동 29위(12언더파 276타)에 올랐으나 플레이오프 순위 34위로 투어챔피언십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페덱스컵 포인트와 플레이오프 랭킹 보너스

페덱스컵 포인트와 플레이오프 랭킹 보너스는 일종의 PGA투어의 당근과 채찍 성격이 강하다. 시즌 중 투어의 열기를 달구고 시즌이 끝난 뒤에도 골프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메이저 대회가 끝난 8~9월 이후 유명선수들이 소극적으로 대회에 참가하면서 흥행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PGA투어 사무국이 2007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시즌 초·중반 두둑한 상금을 챙긴 선수들이 후반에는 참가 횟수를 줄이거나 전력투구를 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적인 물류회사인 FedeX(페덱스)가 후원을 하기 때문에 '페덱스 컵'이란 이름이 붙었다.

거액의 보너스와 상금이 걸린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대회는 정규시즌이 끝난 뒤 열리지만 정규시즌 내내 대회 성적에 따른 정해진 페덱스 포인트를 부여한다. 시즌이 끝난 뒤 열리는 플레이오프의 ‘돈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대회에 출전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도록 선수들을 독려하는 의도다.

좋은 취지로 출발했지만 페덱스컵 우승자와 투어 챔피언십 우승자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생겨 페덱스컵 플레이오프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초기에 투어 챔피언십 결말이 나기 전에 이미 포인트에 의해 페덱스컵 수상자가 결정되어 최종 투어 챔피언십이 김빠진 대회로 전락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2008년 비제이 싱은 투어 챔피언십 결말이 나기 전에 이미 포인트로 페덱스컵 수상이 결정되었고 2009년에도 투어 챔피언십 판가름 전에 타이거 우즈의 수상이 결정났다. 이때 투어 챔피언십 트로피는 저스틴 로즈가 차지했다.

그래서 2015년 포인트 재설정(reset) 방식을 도입,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 진출한 선수 누구나 페덱스컵을 차지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럼에도 2017년 투어 챔피언십은 잰더 셔펠레가 차지했지만 페덱스컵은 저스틴 토마스에게 돌아갔다. 이에 최종전 우승자가 페덱스컵도 차지할 수 있도록 2019년 페덱스컵 제도에 대대적인 수술이 가해졌다.

종전 4개(노던 트러스트 챔피언십, 델 테크놀로지 챔피언십, BMW 챔피언십, 투어 챔피언십)이던 플레이오프를 델 테크놀로지 챔피언십을 뺀 3개 대회로 줄였다.

정규시즌 누적 포인트 순위 125위까지 플레이오프 1차전 노던 트러스트 챔피언십에 참가할 수 있다. 이때 시즌 중에 획득한 누적 포인트는 없어지고 새롭게 리셋 된 포인트가 부여된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리셋 된 포인트와 새로 얻은 포인트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2007년에 가장 먼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페덱스컵 우승을 차지한 타이거 우즈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첫 플레이오프에서 출전자 125명 중 상위 70명이 두 번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여기서 추린 30명이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서 1,500만 달러의 보너스 상금을 놓고 경쟁한다.

페덱스컵 포인트의 핵심은 포인트다. 정규시즌의 포인트와 플레이오프의 포인트가 다르다.

정규시즌에선 메이저 대회 우승 600포인트, 월드골프챔피언십 우승 550포인트, 일반대회 우승 500포인트, 기타 이벤트 대회 우승은 250포인트를 부여하는데 85위까지 점수가 차등으로 부여된다,
1, 2차 플레이오프 우승자는 일반대회 우승 포인트의 4배인 2,000포인트를 받는다. 2위(1,200포인트)에서 30위(112포인트)까지 차등으로 새로운 포인트가 부여된다.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는 다시 한번 포인트가 리셋 된다. 포인트는 없어지는 대신 포인트를 바탕으로 환산한 새로운 스코어가 경기 전에 미리 주어진다.

1, 2차 플레이오프 누적 포인트 1위 선수는 최종전을 10언더파에서, 2위는 8언더파에서 출발한다. 3-5위는 각각 7언더파, 6언더파, 5언더파, 6-10위는 4언더파, 11-15위는 3언더파, 16-20위는 2언더파, 21-25위는 1언더파, 26-30위는 이븐파에서 시작한다.

단순히 72홀 스코어가 아니라, 타수 조정 이후 최저타를 친 선수가 투어챔피언십과 페덱스컵을 한꺼번에 차지하게 된다.
출발선이 다른 이 같은 경기 방식은 스포츠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PGA투어 사무국은 투어 흥행을 위해 이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바뀐 제도가 처음 실시된 2019년 투어챔피언십에선 로리 매킬로이가 5언더파로 출발하고도 10언더파를 미리 받은 저스틴 토마스, 9언더파로 출발한 패트릭 캔틀레이, 8언더파로 출발한 브룩스 켑카를 제치고 1,500만달러(한화 약 178억원 상당)의 돈벼락 주인공이 되었다.

선수들이 플레이오프에 나가기 위해 페덱스 포인트 쌓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뭐니 뭐니해도 어마어마한 상금 때문이다.
우승자에게 1천5백만 달러, 2위에게 5백만 달러, 3위에게 4백만 달러가 돌아간다. 꼴찌인 30위를 해도 39만5천달러(한화 약 4억7천만원 상당)의 상금을 받으니 웬만한 대회 우승상금을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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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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