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 프로가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시즌 6번째 우승을 확정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KLPGA


[골프한국] 영웅은 환호받고 독재자는 외면받는다.

타이거 우즈는 장기간 PGA투어를 중심으로 세계골프를 지배하며 독주했다. 근현대 골프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카리스마 넘치는 골프황제로 추앙받았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 골프 팬들의 가슴에 골프황제로 살아있다. 

그는 탁월한 기량에 독보적인 퍼포먼스로 골프 팬들을 전율케 했다. 유색 인종, 소외된 계층에겐 희망의 등불이기도 했다. 세계 골프산업은 그로 인해 눈부시게 도약했고 지역사회에 대한 기부와 불우아동들을 위한 자선행사로 스포츠 스타의 역할을 재정립했다. 그의 영향으로 LPGA투어 선수들도 지역사회와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 및 기부행사가 정착되었다. 

우즈가 장기간 독주했지만 골프황제로 추앙받는 것은 그가 골프의 독재자가 아닌 영웅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박민지(23)가 지난 11일 끝난 KLPGA투어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역전 우승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생생하다. 
올 시즌 치러진 13개 대회 중 11개 대회에 출전해 그중 6승을 휩쓴 박민지를 보는 골프 팬들의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완전히 골프 신이 강림하셨군!”
“폭주하는 기관차나 다름없어. 저 무서운 기세를 누가 막겠어.”
“이런 기세라면 박성현이나 신지애의 기록도 뛰어넘겠어.”

박민지의 미친 질주에 놀라며 찬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선수들 사이에선 인기가 없겠는데….”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겠는데….”
“너무 독주하는 거 아니야. 다른 선수들도 먹고 살아야지.”
“현역선수 중에 80% 이상이 1승도 못 올렸다는데 혼자서 한 시즌 벌써 6승이라니….”

박민지의 탁월한 기량보다는 박민지의 우승으로 소외되는 선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2021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투어 박민지 프로. 사진제공=KLPGA


박민지는 상반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시즌 상금 11억원을 넘게 쌓아 부동의 상금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6승 달성과 시즌 상금 11억원 돌파를 7월에 달성한 것은 모두 역대 최단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모두 박성현(28)이 갖고 있다. 박성현은 2016년 8월 보그너 MBN 여자오픈에서 시즌 6승을 달성했고 9월 한화금융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시즌 상금 11억원을 돌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신지애(33)의 한 시즌 최다승 9승(2007년)과 박성현의 한 시즌 최다 상금액(2016년 약 13억3300만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18일 경기도 양주시 레이크우드CC(파72)에서 열린 에버콜라겐 퀸즈 크라운 최종 라운드에서 무명의 전예성(20)이 연장 승부 끝에 허다빈(22)을 누르고 생애 첫 우승을 따냈다.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에버콜라겐 퀸즈 크라운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예성 프로가 연장전 경기를 마친 후 허다빈과 포옹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KLPGA

한때 공동 선두가 8명에 달하기까지 했던 이 경기를 지켜본 골프 팬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이제야 재미있는 각축전이 벌어지는구먼.”
“박민지가 빠지니 저렇게 많은 선수들이 선두경쟁을 벌여 볼 만하지 않아요?”
“우승 못 해본 선수들도 기회를 잡아야지.”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애.”

공교롭게도 우승 경쟁을 벌였던 전예성, 허다빈, 현세린(20) 등은 모두 첫 승이 간절한 선수들이었다.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골프 팬들도 선수들만큼 간절한 마음을 표시했다.

전예성은 지난 시즌을 마쳤을 때 상금 순위가 61위로 60위까지 주는 시드를 받지 못해 시드 순위전을 거쳐 기사회생,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한편 올 시즌 6승을 거두며 대상포인트·상금·다승 부문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박민지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2타를 잃고 5언더파 283타로 공동 46위로 마쳤다. 올 시즌 컷 탈락한 2개 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순위다.

박민지의 우승 행진은 이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진했다가도 도약하며 우승을 거머쥐는 정신력으로 보아 그의 승수 쌓기는 이어질 터이다.

▲2021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투어 박민지 프로. 사진제공=KLPGA


그러나 그가 승수를 쌓아가고 상금액수를 늘리면서 ‘골프여왕’으로 추앙받을지는 미지수다.

그는 6승 후 “남은 시즌에도 착실하게 우승을 쌓아 시즌 최고 기록을 경신해 보겠다”는 각오를 밝혀 신지애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넘겠다는 자세다. 

무엇보다 상금 욕심이 강하다. 물론 자신이 아닌 그동안 뒷바라지해준 부모님을 위해서다. 
“부모님이 노후에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열심히 모으고 있는데 아직 반도 못 채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골프 팬들은 강인한 정신력에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박민지가 단지 부모님의 노후를 위한 ‘상금 모으는 선수’가 아닌 ‘골프여왕’ ‘골프여제’로서 승수를 쌓으며 동시에 감동을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골프 팬들은 승리와 돈을 좇는 냉혹한 승부사보다는 탁월한 기량과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진심이 담긴 사회 기여 등으로 감동을 주는 선수에게 환호를 보낸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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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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