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 사소가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인 제76회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USGA/John Mummert


[골프한국] ‘여자 타이거 우즈’
골프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여자선수들에게 따라붙는 최상급의 수식어다. 나이와 상관없이 기량이 특출한 선수가 나타나면 미디어는 즐겨 이 수식어를 소환해왔다. 10대 소녀에게도, 20대 성인에게도 이 수식어를 동원했다.

가장 먼저 이 수식어로 장식된 선수가 미국교포 미셸 위(31)일 것이다. 10대 때부터 남자를 압도하는 비거리 등 천부적인 골프 재능으로 성인대회는 물론 남자대회에까지 출전했다. 또래끼리의 대회에서 우승의 기억을 쌓았더라면 훨씬 더 성공한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소리도 나오지만 그에게 따라붙는 ‘천재소녀’에 거부감을 갖는 골프 팬은 없다.

올해 US여자오픈에 참가해 화제를 모은 루시 리(18·미국)도 10대 초반부터 ‘미래의 여자 타이거 우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가공할 스윙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많은 골프 팬들의 사랑을 받는 그는 여전히 대성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32)도 여자골프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박성현(27)이 LPGA투어에 진출했을 때도 남성을 방불케 하는 힘찬 스윙과 놀라운 비거리로 동료선수나 미디어로부터 ‘여자 타이거 우즈’로 평가받았다.

최근엔 지난 4월에 열린 시즌 첫 메이저인 ANA 인스퍼레이션에 완벽한 와이어 투 와이어로 우승, LPGA투어 첫승을 메이저대회로 화려하게 장식한 태국의 신인 패티 타바타나킷(21)이 ‘여자 브라이슨 디섐보’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수식어가 동시에 따라붙었다. 타이거 우즈의 어머니가 태국인이라 우즈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태국 선수에게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당분간 그에게서 이 수식어를 빼앗아 갈 선수는 한동안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4~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올림픽 클럽 레이크코스에서 열린 제76회 US여자오픈에서 2차 연장전 끝에 일본의 하타오카 나사(22)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린 유카 사소(19)에게 이 수식어가 넘어갔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인 제76회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서 유카 사소와 우승 경쟁을 벌인 렉시 톰슨의 모습이다. 사진제공=USGA/Darren Carroll

한때 5타 차 선두를 달리던 미국의 렉시 톰슨(26)은 속절없이 타수를 까먹으면서 사소와 하타오카에게 공동선두를 내주고 자신은 3위로 주저앉았다.

18번 홀에서의 1차 연장전에서 승부를 못 가린 두 선수는 9번 홀에서 치러진 2차 연장전에서 사소가 버디를 잡으면서 파에 그친 하타오카를 누르고 신데렐라로 탄생했다.

US여자오픈 우승컵을 받아쥔 날 그의 나이는 만 19세 11개월 17일. 2008년 박인비(33)가 세운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기록과 날수까지 같다. 또 필리핀 국적의 선수로는 지난 2004년 칙필 A 채리티 챔피언십과 2005년 SBS오픈에서 우승한 제니퍼 로살레스에 이어 두 번째다.

JLPGA에서 활동중인 유카 사소는 이번 대회에 스폰서 초청으로 참가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를 봐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필리핀에서 태어난 그의 국적은 필리핀이지만 아버지가 일본 국적이어서 사실상 가진 이중 국적자인 셈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8세 때 골프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미아자토 아이, 이시카와 료 등 일본 선수와 로리 매킬로이, 타이거 우즈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골퍼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166cm 63kg의 왜소해 보이는 체격에도 불구하고 로리 매킬로이를 닮은 스윙으로 장타를 때려내 필리핀의 골프영웅으로 부상했다.

▲유카 사소가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인 제76회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US여자오픈 우승을 확정한 뒤 캐디와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다. 사진제공=USGA/John Mummert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필리핀 대표선수로 출전, 한국의 임희정, 조아연과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태국의 아타야 티티쿨 등을 제치고 여자골프 개인과 단체전 2개의 금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그해 11월 프로 테스트에 합격해 2019년 JLPGA투어에 가입, 2020-2021 시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에 니토리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NEC 가루이자와72 골프토너먼트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등 일본 진출 첫해에 2승을 거두었다. 10대에 JLPGA투어 2연승은 미야자토 아이, 하타오카 나사에 이어 세 번째다.

인종적인 배경은 타이거 우즈와 유사하다. 미국 국적의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골프선수로 대성한 타이거 우즈처럼,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나라 일본에서 골프선수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태국에서 타이거 우즈의 인기가 높듯 유카 사소 역시 필리핀에서 골프영웅으로 인기가 높다. 이런 그를 일본은 자국 선수로 알려지기를 바라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필리핀에서 열린 대회에 사소와 함께 라운드한 경험이 있는 박성현은 그의 장타력에 놀라며 가능성을 인정했다.
앞으로 LPGA투어에서 패티 타바타나킷과 유카 사소가 ‘여자 타이거 우즈’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될 것 같다.

한국 선수 가운데선 이 대회 3번째 우승을 노렸던 박인비와 세계랭킹 1위 고진영(26)이 합계 1오버파 285타를 쳐 공동 7위에 올랐다. 한때 단독선두에까지 올랐던 이정은6(25)는 공동 12위(2오버파), 김세영(28) 공동 16위(4오버파), 김효주(26) 공동 20위(5오버파)로 대회를 마쳤다. 기대를 모았던 디펜딩 챔피언 김아림(25)은 아쉽게 컷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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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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