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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어떤 부부가 있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했는데도 부부 사이는 데면데면했다. 원수처럼 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 닭 쳐다보듯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한방만 썼을 뿐 각자 생활을 고집했다. 

남자는 일을 이유로 늘 밖으로 나돌았고 휴일에도 일의 연장이라며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나름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지역 문화센터를 다니며 취미생활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주위로부터 골프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틈만 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고 술이 거나해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으로 보아 자신이 관심 가질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 친구가 진지하게 말했다.
“정 마음이 안 내키면 한 일주일만 연습장에 나와 봐. 그래서 재미가 없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잖아?”
친구를 따라 연습장에 나가 본 여자는 1주일도 되기 전에 중고 채를 마련하고 골프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골프채를 잡고 보니 운동도 되고 은근히 재미도 있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남자는 아내의 이런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중고 골프채를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골프연습장에 등록하는 일까지 남편과는 일절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심 남편이 사업상 골프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여자는 언젠가는 남편의 골프파트너가 되어보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결국 잠자리에서 여자는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어느 날 아내의 손을 잡아본 남자는 놀랐다. “아니 당신 손이 왜 이래?”
“손이 어때서요? 집에서 빨래하고 살림하면 이렇게 돼요. 그동안 내 손을 얼마나 안 잡았으면 그것도 모를까?”
여자는 시치미를 뗐으나 남자는 속지 않았다. 

“당신 골프 배우지? 얼마 됐어? 나는 못 속여.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근육이 단단해진 것을 보면 꽤 되는 것 같은데?”
“혼내려고요?”
“내가 왜 혼을 내. 좋은 골프파트너가 생기면 좋지. 은퇴해서 골프파트너 없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했는데 잘 됐네. 그동안 부부동반 라운드가 많았는데 나는 못 나갔잖아. 당신과 라운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얼마 후 부부동반으로 라운드할 기회가 생겼다.
첫 홀 티박스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우린 부부가 아니라 골프파트너란 사실 명심합시다. 골프룰과 에티켓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라운드하는 겁니다.”
워낙 열심히 연습한 탓인지 초보치곤 경기 진행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는 됐다. 남자도 이런 아내를 대견해 하며 골프장에서 꼭 지켜야 할 규칙과 에티켓, 환영받는 골프파트너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자세와 방법 등을 끈기를 갖고 가르쳐주었다. 물론 여자는 남편의 이런 가르침을 고마운 마음으로 접수했다.

자연스럽게 부부 사이에는 골프장에서만은 부부로서가 아니라 골프파트너로서 대한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경쟁할 때나 상대방을 배려할 때나 어떤 상황에서도 부부가 아닌 골프파트너가 우선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내기를 해도 계산이 철저했다. 남자로부터 핸디캡을 받지만 내기에서 여자가 이기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여자의 골프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고 골프의 묘미도 더해졌다. 부부관계도 한결 가까워졌고 새로워져 살맛이 났다. 
부부동반 라운드를 기피했던 남편이 오히려 부부동반 라운드 주선에 적극적이 되었다.
‘그때 친구 말을 듣지 않고 골프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자는 부부금슬을 되찾게 해준 골프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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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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