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야 주타누간, 혼다 타일랜드 8년 전 역전패 역전승으로 승화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을 차지한 아리야 주타누간. 사진제공=Getty Images


[골프한국] 기다리는 자가 우승한다?
LPGA투어에 새로운 징크스가 생길지 모르겠다.

지난 4월 29일~5월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선두에 5타나 뒤진 공동 8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김효주(25)는 하루에 버디만 8개를 잡고 경기를 끝낸 뒤 챔피언조의 경기결과를 기다렸다.

챔피언조에서는 단독 선두 린 시위(25·중국)가 답보하는 사이 호주의 한나 그린(24)이 무서운 기세로 스퍼트를 올렸다. 한나 그린은 14번 홀에서 이글을 한 뒤 16번 홀에서 버디를 보태면서 경기를 끝낸 김효주에 한 타 앞선 단독 선두에 올랐다. 김효주는 한나 그린의 기세를 보며 연장전 준비도 않고 휴게실에서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한나 그린이 17, 18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면서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김효주의 1타 차 우승이 확정되었다. 

1주일 후인 9일 태국 촌부리의 시암CC 파타야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태국의 전 세계 랭킹 1위 아리야 주타누간(25)이 챔피언조에 앞서 1타 차이 단독 선두로 경기를 끝내고 챔피언조의 같은 태국선수인 아타야 티티쿨(18)과 패티 타바타나킷(21), 그 바로 앞조에서 뛴 호주의 한나 그린의 경기결과를 기다렸다.

마지막 라운드 신인으로 메이저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패티 타바타나킷이 17언더파, 아타야 티티쿨이 16언더파, 한나 그린이 15언더파로 시작했지만 ‘하룻강아지’ 아타야 티티쿨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기세가 ‘여자 디섐보’ 패티 타바타나킷과 호주의 강자 한나 그린을 압도했다.

아리야 주타누간에 한 타 뒤진 아타야 티티쿨로선 투온이 가능한 18번 홀(파5)에서 버디로 연장전으로 가거나 이글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홀에서 티티쿨이 회심의 드라이브 샷을 날리고 난 직후 뇌우 위험으로 경기가 중단됐다.     

경기가 재개된 뒤 티티쿨의 두 번째 샷은 그린을 살짝 넘어갔다. 세 번째 어프로치샷이 홀 1m 남짓한 거리에 붙어 아리야 주타누간과의 연장전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티티쿨의 버디 펏은 홀을 외면했다. 18번 홀 그린 옆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아리야 주타누간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 우승을 차지한 아리야 주타누간. 사진제공=Getty Images


챔피언조에 앞서 단독 선두로 경기를 마친 선수가 우승하는 사례는 드물지만 연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까닭이 있어 보인다. 

챔피언조의 선수가 많은 타수 차이로 앞서지 않는 한 먼저 경기를 마친 선수와의 타수 차이가 한두 타라면 압박감을 느낄 것은 당연하다. 이 압박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선수에게 우승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연속해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징크스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이 대회와 얽힌 아리야 주타누간의 희비(喜悲)가 극적이다.

8년 전인 2013년 이 대회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17번 홀까지 그는 박인비에 2타 앞선 단독선두였다.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그는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다. 굳이 투온을 노릴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는 우드를 뽑아 들고 투온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은 그린 앞 벙커 턱에 깊이 박혔다. 언플레이블을 선언하고 4번째 샷으로 온 그린을 노린 공도 그린 뒤 러프에 떨어졌고 5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한 쭈타누깐은 결국 트리플보기를 범하며 한 타 차이로 박인비에게 우승을 안겼다.
그때 아리야 주타누간은 그보다 키가 작은 언니 모리야 주타누간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아리야 주타누간은 이 아픔을 딛고 2015년 LPGA투어에 데뷔한 뒤 2016년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에서 태국 선수 최초로 LPGA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5승을 올리며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다. 2017년 2승, 2018년 3승을 추가한 주타누간은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가 되며 세계 무대를 평정하는 듯했으나 2019년부터 슬럼프에 빠졌다.

8년 전 역전패의 아픔이 있는 곳에서 역전승을 거둔 그는 언니의 품에 안겨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018년 7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 이후 약 2년 10개월 만의 우승이고 LPGA투어 통산 11승째다. 

아리야 주타누간의 재기 못지않게 최근 LPGA투어에 몰아치는 ‘태풍(泰風)’이 더 무섭다. 세계의 관광객을 부르는 ‘어메이징 타일랜드(Amazing Thailand)’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세계 여자골프에서도 통용될 정도의 태풍(颱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주타누간 자매의 활약과 비슷한 또래의 선수들이 속속 LPGA투어에 진출하면서 태국의 돌풍은 예견되었지만 패티 타바타나킷과 아타야 티티쿨의 등장으로 LPGA투어의 지각변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것도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리더보드 상단을 태국 국기가 차지한 모습은 LPGA투어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준우승한 아타야 티티쿨과 공동 3위 패티 타바타나킷. 사진제공=Getty Images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일으킨 패티 타바타나킷의 선풍도 LPGA투어를 발칵 뒤집었듯 아타야 티티쿨은 새로운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의 강렬한 전역(前歷)을 보면 나이 이제 갓 만 19세이지만 주타누간 자매나 패티 타바타나킷에 뒤지지 않는 골프 재능을 타고 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6세 때 골프채를 잡은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미셸 위(31)나 리디아 고(24), 브룩 핸더슨(23), 김효주 등에 손색없는 골프천재다.

2017년 14세 4개월의 나이의 아마추어로 LET(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레이디스 유러피언 타일랜드 챔피언십에 출전, 최연소로 우승했다. 2019년 같은 대회에서도 아마추어로 참가해 우승했는데 우승과 함께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KLPGA 대회인 하나금융 챔피언십에 초청되어 공동 12위에 오르며 국내에도 얼굴이 알려졌다.
아직 LPGA투어 멤버가 아니지만 패티 타바타나킷에 견줄만한 탁월한 상품가치로 미뤄 잦은 초청으로 기회를 얻거나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거쳐 LPGA투어에 진입할 경우 스타로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태국은 더이상 골프 변방이 아니다. 기량이나 수적인 면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신흥 골프강국으로 부상했다. 연중 골프를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도 갖추고 있다.

LPGA투어 올 시즌 풀시드 선수 145명 중 미국이 55명, 한국이 21명으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태국이 8명으로 세 번째로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통적인 골프 강국인 영국, 스웨덴이 각 6명, 호주가 5명, 캐나다, 프랑스, 중국이 각 4명, 독일, 스페인, 남아공, 덴마크, 일본이 각 3명인 것을 감안하면 태국 골프의 무서운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 골프가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5년과 2017년, 2019년에 이어 이 대회 네 번째 우승 사냥에 나선 양희영(32)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8타를 줄이면서 합계 20언더파 268타를 쳐 유소연(31), 패티 타바타나킷과 함께 공동 3위에 오르고 최운정(30)이 공동 7위에 오르는 등 선전했으나 앞으로 한국선수의 우승 길에 태국 선수들이 가로막는 일은 더욱 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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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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