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대역전 우승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김효주 프로가 우승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Getty Images



[골프한국] 쇼트트랙 경기를 보는 듯했다.지난 5월 2일 LPGA투어 시즌 여덟 번째 대회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이 열린 싱가포르의 센토사GC의 뉴 탄종코스(파72)는 쇼트트랙을 방불케 했다.

총 길이 6,740야드(6,163.5m)의 골프코스가 마치 전장 111.12m인 쇼트트랙으로 압축된 느낌이었다. 쇼트트랙에서 선수들의 순위가 수시로 뒤바뀌듯 마지막 라운드 뉴 탄종코스에서도 선수들의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전 세계 각지의 동계스포츠 대회에서 한국의 남녀선수들이 쇼트트랙 종목을 휩쓸던 때의 환희를 5월의 초원에서 맛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쇼트트랙에서처럼 치열한 선두 경쟁의 한 가운데에 한국여자 선수가 있기에 맛볼 수 있는 환희였다.

1~2라운드에서 무결점 플레이로 선두를 달리던 박인비(32)가 3라운드 16번홀(파5)에서 공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리며 더블보기를 하는 바람에 1타 차이로 선두 자리를 중국의 린 시유(25)에게 내주면서 4라운드의 대추격전은 예고됐었다.
 
선두 탈환을 노리는 선수는 박인비 혼자만이 아니었다. 박인비 역시 4라운드에서 혼신의 경기로 단독선두 또는 공동선두에 오르기도 했지만 린 시유, 호주의 강자 한나 그린(24), 태국의 ‘괴물’ 패티 타바타나킷(21). 김효주(25) 사이의 각축전은 영화 ‘벤허’의 압권인 전차 경주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긴장미와 박진감이 넘쳤다.

1타 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린 시유는 아직 우승을 해보지 못한 선수 특유의 긴장 탓인지 보기 하나에 버디 2개로 추격의 동력이 부족했다. 

한나 그린은 14홀(파4) 이글을 비롯해 3개의 버디를 보태 단독선두로 나섰으나 17, 18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면서 한 타 차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의 김효주의 역주는 불꽃같았다.

선두 린 시위에 5타 뒤진 공동 8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김효주는 영락없이 후미에서 분위기를 살피다 송곳처럼 선두로 파고드는 쇼트트랙 선수 모습이었다. 

15번 홀까지 버디만 8개를 골라내 단독 1위에 이름을 올린 김효주는 경기를 끝내고 무서운 추격세를 보인 한나 그린의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한나 그린이 14번 홀 이글에 이어 16번 홀 버디를 하면서 단독 선두에 나섰으나 17, 18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면서 김효주의 1타 차 우승이 확정되었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김효주 프로와 최종라운드에서 동반 경기한 패티 타바타나킷. 사진제공=Getty Images


김효주의 동반 플레이어인 태국의 패티 타바타나킷은 ‘괴물신인’이란 수식어에 어울리는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김효주의 플레이가 워낙 돋보여 빛을 잃었다. 
준우승 한나 그린에 이어 박인비, 린 시유, 패티 타바타나킷 등 3명이 공동 3위에 올랐다.

2016년 2월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LPGA 투어 통산 3승째를 거둔 뒤 긴 침묵을 지켰던 김효주는 이날 우승으로 약 5년 3개월 만에 통산 4승째를 올렸다.

2014년 LPGA투어 비회원으로 출전한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깜짝 우승하며 LPGA투어로 직행한 김효주는 이듬해인 2015년 JTBC 파운더스컵, 2016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했으나 2017년 이후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깊은 슬럼프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LPGA투어가 중단되자 국내로 들어온 김효주는 KLPGA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과 KB금융 챔피언십에서 2승을 올렸다. 국내에서 활동하면서도 LPGA투어를 향한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올 시즌 3월의 기아 클래식부터 LPGA투어 활동을 재개한 그는 이 대회에서 공동 5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후 ANA인스퍼레이션 공동 28위, 롯데 챔피언십 공동 17위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다 네 번째 참가한 대회에서 마지막 라운드 대역전극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부활을 포기하지 않은 집념의 선물이다. 

▲2021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 대회 크리스 F&C 제43회 KLPG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박현경 프로. 사진제공=KLPGA


한편, KLPGA투어에서도 박현경(21)이 역전극의 드라마를 쓰며 시즌 첫 승과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박현경은 2일 전남 영암 사우스링스 영암CC에서 열린 KLPGA 챔피언십 마지막 4라운드에서 강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2언더파를 쳐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로, 사흘 내내 선두를 달리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노린 김지영(25)과 김우정(23)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통산 3승째다.

1978년 처음 열려 국내 여자 프로 골프대회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KLPGA 챔피언십은 1980년부터 1982년 대회까지 3년 연속 우승한 고(故) 구옥희 이후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선수가 없었는데 박현경이 39년 만에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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