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리디아 고. 사진제공=Getty Images


[골프한국]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3·한국이름 고보경)가 전혀 다른 차원의 ‘골프 천재’로 다시 돌아왔다. 

아마추어이자 LPGA투어 비회원으로 2012년과 2013년 LPGA투어 CN 캐나디언 여자오픈에서 첫 우승과 타이틀 방어로 세계를 놀라게 한 그에겐 자연스럽게 ‘골프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14년 LPGA투어에 정식 데뷔한 뒤 ‘골프 천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승 퍼레이드를 펼쳤다. 데뷔 첫해인 2014년 3승, 2015년 5승, 2016년 4승 등 3시즌 동안 무려 12승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2017년부터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시기적으로 골프채부터 코치, 캐디 등을 교체한 것과 겹쳤다.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가족의 지나친 개입 얘기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그는 2018년 1승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리는 듯했지만 2019년과 2020년 우승을 보태지 못했다.

그가 슬럼프에 빠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위해 자기 개조작업에 몰두한 시기였던 것 같다. 골프의 차원을 높이기 위해 나름의 시도를 하며 새로운 자신만의 골프 문법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외부에는 슬럼프로 비쳤을 뿐이다.
2018년 메디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지만 그의 개조작업은 완성되지 않은 듯 다시 무승의 기간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즌 초 네 번의 출전에서 두 차례 준우승하는 등 톱10에 3회나 올랐다. 특히 직전 주에 열린 시즌 첫 메이저 ANA인스퍼레이션에선 단독 2위로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늦게 시동이 걸려 괴력의 신인 패티 타바타나킷(21·태국)에 2타 뒤진 준우승에서 머물렀지만 그의 플레이는 예전과 달랐다.

15~18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 카폴레이의 카폴레이GC(파72·6,563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리디아 고는 새로운 ‘골프 천재’로 다시 태어났다. 

1타 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리디아 고는 바람 속에서도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며 타수를 줄여나갔다. 보기 없이 7언더파 65타를 친 그는 최종합계 28언더파 260타로 박인비, 김세영, 넬리 코다 등 4명의 공동 2위에 7타 앞선 압도적 기량을 과시했다. 2018년 4월 메디힐 챔피언십을 우승 이후 3년 만이다. LPGA투어 통산 16승째.

오는 24일로 만 24세 생일을 맞는 리디아 고가 새로운 골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리디아 고가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Getty Images


리디아 고의 이날 플레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마음의 정화(淨化)를 느끼게 했다.
리디아 고의 골프는 물 흐르는 듯했다. 억지가 없었다. 맺히고 얽힘도 안 보였다.

좋은 샷을 날린 후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엷은 웃음으로 넘겼다. 미스 샷 후에도 미소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다. 동반자의 굿샷에 함께 기뻐하고 아쉬운 실수에 함께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리디아 고처럼 무엇인가를 웃어넘기기는 자세는 골퍼 최고의 장점이다. 막히고 고인 데 없이 잘 흐르는 개울과 같다. 미스샷 후 곧 아쉬움의 미소 한번 짓고는 다음 샷에 집중하는 모습은 마치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진 뒤 잔잔한 물로 돌아가는 모양을 닮았다.

무엇보다 그의 최고의 장점은 골프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다. 
리디아 고는 무위(無爲)의 골프,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골프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전 라운드에서 무서운 기세를 보였던 넬리 코다나 유카 사소(20) 같은 선수들이 리디아 고 앞에서 기를 못 편 것을 보면 그의 ‘흐르는 물 같은’ 골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깨닫게 된다. 

일본계 필리핀 국적의 유카 사소는 태국의 패티 타와타나킷에 비견되는 ‘괴물 선수’로 한국선수들의 호적수가 될 전망이다. 초청 선수로 참가해 선두경쟁을 벌이며 공동 6위에 오른 것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누르고 여자골프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따고 JLPGA투어에서 2승을 거둔 그의 행적을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중위권에 머물다 무섭게 뒷심을 발휘해 공동 2위에 오른 박인비, 김세영, 신지은, 공동 10위의 양희영과 신인 김아림, 공동 17위 유소연, 김효주 등도 상승기류를 탄 모습을 보여 앞으로의 LPGA투어가 볼만할 것 같다.

추천 기사: 임성재, RBC 헤리티지 공동4위 지켜…3R 선두는 '노장' 싱크 [PGA]

추천 기사: '우승 향한' 문도엽,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3R 선두…최민철·문경준·김주형 추격전 [KPGA]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