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 제85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한 마쓰야마 히데키가 그린재킷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누군가 말했다.“골프코스란 신기루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평평한 푸른 잔디밭으로만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깊은 숲과 넓은 사막, 험악한 계곡, 그리고 물이 산재해있다.”

지구촌의 골프 명인 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린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GC를 두고 한 말 같다.

4월의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는 신들의 정원이다. 수령 100년 전후의 나무들이 빼곡한 숲에 꽃이란 꽃은 다 모여 있다. 그 속에 벨벳을 깔아놓은 듯한 눈부신 잔디, 개울과 연못, 모래밭이 지상 최고의 골프코스를 만들어낸다. 천국에 골프코스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9~12일(한국시간)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신들의 심술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신들의 정원을 보통 골프코스 대하듯 농락하러 덤벼든 선수들에게 안긴 죗값은 가혹했다. 선수들 대부분이 노한 신들의 심술과 훼방에 탄식을 뱉으며 좌절과 분노를 맛봐야 했다. 극히 일부 운 좋은 선수들만 변덕쟁이 신들이 한눈파는 사이 원하는 보물을 챙길 수 있었다.

오거스타 내셔널GC는 영원한 아마추어 ‘구성(球聖)’ 바비 존스(Robert Tyre Jones Jr.: 1902~1971)가 만들 때 이미 지구촌 최고의 골프코스로 예정돼 있었다. 

골프 사가들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꼽히는 그는 아마추어로 당시 4대 메이저, 즉 미국과 영국의 오픈 및 아마추어 선수권을 13회나 우승했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던가는 4대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던 기간은 겨우 13년, 그것도 9년은 고교와 대학생 시절로 평생 출전게임 52회 중 23회 우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골프선수로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서도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에모리대에서 법률을 전공해 변호사자격을 얻고 프랑스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문학, 고대문화사, 비교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은 지성파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육군 소령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보비 존스는 프로 전향을 거부하고 최전성기인 1930년 은퇴했다. 그러나 최고의 골프코스를 만들겠다는 꿈은 접지 않았다. 그동안 골프코스 건설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금융계 친구 클리포드 로버츠와 조지아 주 오거스타(Augusta) 근처에 부지를 사들여 코스 건설에 나섰다.

코스는 존스와 스코틀랜드의 골프코스 설계·건설 전문가 앨리스터 매켄지와 공동 설계해 1931년에 착공, 2년 뒤 개장하고 오거스타 내셔널GC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 대회를 열기 시작했다. 1940년 대회 이름을 마스터스 토너먼트로 변경했다.

첫 대회가 1934년에 열렸으니 올해 대회는 햇수로는 88년, 횟수로는 대회를 열지 못한 2차대전 기간(1943~1945년) 3년을 빼고 85회째다. 

최고의 골프코스를 지향한 오거스타 내셔널GC는 회원도 소수로 제한했고 신규 가입은 엄격한 기준에 의해 클럽의 결정에 따른 초대로만 이루어졌다. 회원들은 왼쪽 가슴에 클럽 로고가 새겨진 녹색 재킷을 입는데 1949년부터 우승자에게 녹색 재킷을 입히기 시작했다.

USGA(미국골프협회)나 R&A(영국왕립골프협회)가 주도하는 다른 3개의 메이저 대회가 매년 코스를 바꿔가며 열리는 것과는 달리 마스터스 토너먼트만은 한 곳에서 열리는 것도 협회의 간섭 없이 골프클럽이 독자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20개에 달하는 엄격한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가능하다. 코스의 난이도와 완성도를 위해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코스 관리를 위해 문을 닫는다.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한 페어웨이는 디봇 하나 용납하지 않는다. 그린 밑에는 토양의 온도, 습도, 산소량 등을 조절하는 등 시설이 갖춰져 있어 눈비가 내려도 30분만 지나면 정상적인 그린으로 회복된다. 

특히 11, 12, 13번 3개 홀은 좁은 페어웨이와 유리판 그린으로 이 코스에 들어설 때는 무사히 지나가기를, 통과하고 나서는 무사히 통과했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고 해서 ‘아멘코너’라는 별칭이 붙었다.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 제85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출전한 더스틴 존슨, 로리 맥길로이, 임성재, 김시우 프로.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올해 대회는 유난히 신들의 노여움과 변덕이 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4월 대회가 11월로 옮겨 열린 지난해의 경우 더스틴 존슨(36)이 코스를 유린하며 무려 20언더파란 역대 최저타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신들의 정원에서 인간들이 무례하게 설친 모습에 신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지 않겠는가.

신들의 노여움이 아니더라도 클럽 측의 자존심이 상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명문 코스들은 명성을 지키려고 아무나 함부로 공략할 수 없도록 난이도를 높이려고 기를 쓰는데 지구촌 최고 코스를 자부하는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20언더파란 황당한(?) 기록이 나왔으니 이번에 혼쭐나게 해주리라 단단히 별렀으리라.

희생자가 속출했다. 본보기를 보여주듯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1위인 더스틴 존슨이 컷 통과에 실패했다. 지난해 준우승하며 올해도 기대를 모았던 임성재(23)도 1라운드 15번 홀(파5)에서 공을 두 번이나 물에 빠뜨리며 쿼드러플보기를 범한 것이 화근이 되어 끝내 컷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밖에 브룩스 켑카, 로리 매킬로이, 리 웨스트우드, 맷 쿠처, 세르히오 가르시아, 맥스 호마, 잭 존슨, 패트릭 캔틀레이, 제이슨 데이 등 우승 경쟁에 나설 쟁쟁한 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김시우가 2라운드 15번 홀에서 미스샷에 대한 불만 표시로 퍼트를 바닥에 내리쳐 손상되면서 우드로 퍼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도 신들의 훼방에 휘둘린 것은 아닐까. 경기 중 선수가 일부러 퍼터를 손상시키면 다른 퍼터로 교체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김시우는 어쩔 수 없이 3번 우드를 퍼터 대용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신들이 심술을 부리고 골프클럽 측이 최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골프코스 곳곳에 지뢰와 함정, 덫을 숨겨놓는 것을 보면 신들이나 클럽 측은 지독한 마조히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이들의 눈총에서 벗어나 겸허하게 자신의 경기를 펼친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29)가 근래 보기 드문 겸허한 플레이로 마스터스 토너먼트 정상에 올랐다. 10언더파 278타를 기록한 마쓰야마는 단독 2위 윌 자라토리스(24·미국)를 1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상금은 207만달러(약 23억2000만원). 

마쓰야마는 이번 우승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마스터스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까지 마스터스에서 아시아 선수 최고 성적은 지난해 11월 임성재의 준우승이었다.
또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양용은(49)에 이어 메이저에서 우승을 차지한 두 번째 아시아 선수가 됐다.

2011년 19세의 아마추어로 마스터스에 첫 출전, 아마추어 선수 중 최저타를 기록하며 실버컵을 받았던 그는 10년 만에 같은 대회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2017년 8월 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3년 8개월 만에 거둔 통산 6승째다.
2013년 프로로 전향한 마쓰야마는 그해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에서 4승을 올리며 사상 첫 신인 상금왕이 된 뒤 이듬해부터 PGA투어로 무대를 옮겼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신들은 변덕이 심했다. 

마쓰야마는 한때 2위에 6타나 앞서며 우승이 예약된 듯했으나 신들이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후반 들어 3개의 보기를 안기며 추격자 잰더 쇼플리(27)에게 추격의 기회를 주었다. 2타 차까지 추격하던 쇼플리가 16번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뒤 트리플보기를 범했다. 꼭 신들이 뒤에서 장난을 친 느낌이 들었다. 역전극이 펼쳐졌다면 대단한 명승부가 되었을 텐데 그런 역전극은 신의 뜻이 아니었는가 보다.

1~3 라운드 선두에 나섰던 저스틴 로즈(40·남아공)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기세가 꺾여 2타를 잃고 꿈을 접었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오거스타 내셔널에선 꿈도 꾸지 말라는 저주가 내린 것은 아닐까.
직전대회 발레로 텍사스 오픈에서 우승하며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조던 스피스(27)는 7언더파로 공동 3위에 오르며 상승기류를 이어갔다.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컷 통과에 성공한 김시우(26)는 2언더파 286타로 재미동포 케빈 나와 함께 공동 12위에 올라 어느새 강자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보여주었다. 
괴력의 브라이슨 디섐보는 최종합계 5오버파로 공동 46위로 신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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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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