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ANA인스퍼레이션에서 LPGA 첫 우승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 우승을 차지한 패티 타바타나킷이 '포피스 폰드'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LPGA투어 2년 차 신인 패티 타바타나킷(21·태국)을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연습라운드에서 처음 만났다.

시즌 첫 메이저인 ANA인스퍼레이션 대회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미션힐스CC의 다이너쇼어 토너먼트 코스 10번 홀. 고진영은 먼저 티박스에 와있던 연습라운드 파트너 패티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눴다.

패티는 2020년 LPGA투어 카드를 얻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대부분 취소되면서 고진영과 라운드할 기회가 없어 첫 대면이었다.

고진영은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안전하게 티샷을 했다. 그런데 티샷 차례가 된 패티는 훨씬 뒤에 있는 티박스에서 드라이버를 들고 서 있었다. 패티의 드라이버 티샷은 힘차게 솟구쳐 250야드 거리의 벙커를 훌쩍 넘어 300야드 가까이 날아갔다.

고진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캐디에게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그때 처음 패티 타바타나킷의 이름을 머리에 담아두었다. 그와의 연습라운드는 고진영에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패티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고진영으로선 그에 대한 기억이나 인상이 없었겠지만 일부 골프 팬들 사이에선 패티는 이미 미래의 신성(新星)으로 강한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진영이 몰랐을 뿐이다.

이 선수가 시즌 첫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되어 ‘포피스 폰드’에 뛰어드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을 차지한 패티 타바타나킷과 경쟁한 고진영 프로. 사진제공=Getty Images

고진영을 놀라게 했던 패티 타바타나킷이 5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완벽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하며 전 세계 골프 팬들을 놀라게 했다.

미션힐스CC의 50년 LPGA투어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이자 보기 드문 초대형 신인의 탄생을 알리는 팡파레가 울린 날이었다. 

마지막 라운드는 근래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타바타나킷이 공동 2위와 5타 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지만 별들의 추격전이 뜨거웠다. 특히 하루에 10언더파를 몰아친 리디아 고의 플레이는 완벽했다. 우승은 못했지만 전성기 때보다 더 완숙한 경기력을 발휘해 슬럼프에서 완전히 탈출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밖에 김세영, 펑샨샨, 넬리 코다, 나나 코에츠 매드센(덴마크), 고진영, 박인비, 이미림 등의 추격이 거세었으나 타바타나킷은 신인의 긴장감을 떨치고 보기 없이 4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우승, LPGA투어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리디아 고가 2타 차이로 단독 2위, 김세영, 펑샨샨, 넬리 코다, 나나 코에츠 매드센 등이 11언더파로 공동 3위, 고진영, 박인비가 10언더파로 공동 7위, 디펜딩 챔피언 이미림이 9언더파로 공동 10위에 올랐다. 

통합된 2020-2021시즌 루키인 타바타나킷은 1984년 줄리 잉스터(미국)가 신인으로 처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이후 37년 만에 두 번째 신인 우승자가 되었다. 또 2000년 캐리 웹(호주) 이후 21년 만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의 기록도 세웠다.

또한 신인으로서 LPGA투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14번째 선수, ANA인스퍼레이션에서 LPGA투어 첫 승을 신고한 6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는 또 태국 선수로는 처음 이 대회 정상을 밟았다. 아리야 주타누간은 2016년 브리티시 여자오픈과 2018년 US여자오픈을 제패했지만, ANA 대회 우승은 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는 모처럼 세계 여자골프의 강자들이 모여 진검 승부를 펼쳤다. 시즌 첫 메이저인 데다 도쿄올림픽 출전권 때문에 대회 전부터 치열한 우승 경쟁이 예견됐었다.

고진영, 박인비, 김세영, 김효주, 박성현, 이정은6, 디펜딩 챔피언 이미림 등 태극낭자들을 비롯해 넬리 코다, 다니엘 강, 렉시 톰슨, 브룩 헨더슨은 물론 태국의 모리아 주타누간, 아리야 주타누간 자매, 중국의 펑샨샨 등 세계랭킹 상위권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이런 선수들이 모인 대회에서 2년 차 신인 타바타나킷의 우승은 LPGA투어에 새로운 파란을 예고한다. 2020년 시즌 신인이었지만 경기 대부분을 치르지 못해 LPGA투어측이 올 시즌에도 신인 신분을 그대로 유지해줌에 따라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부상했다.
  
널리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타바타나킷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던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경쟁을 즐기는 성격의 그는 8세 때 골프를 시작, 타이거 우즈를 보며 골프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방콕에서 국제학교를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UCLA에 다니면 집중적으로 골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2016년 US 걸스 주니어 챔피언십 16강, US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 16강, 2017년 US주니어 챔피언십 2위, 롤렉스 걸스 주니어 챔피언십 3위에 오르더니 AJGA(미국주니어골프협회)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에 이르렀다. UCLA 재학 때 전미(全美) 대학생 대회에서 7회 우승, WGCA(세계골프코치협회) 대회에서 2회 우승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2019년 스폰서 초청으로 손베리 크리크 LPGA 클래식에 출전, 한 라운드에서 자신의 생애 최저타인 61타(11언더파)를 기록하기도 했다.

같은 해 대학 2년을 중퇴하고 2부 투어인 시메트라 투어에 뛰어들어 ‘올해의 신인’으로 뽑혔다. 시메트라 투어에서 3승을 거둔 그는 2020년 상금순위 2위로 LPGA투어 카드를 획득했다. 
이 대회 이전까지 17개 경기에 출전해 예선 통과 9회, 톱10에 세 번 들었다. ANA인스퍼레이션에는 그동안 3번 참가했는데 2019년 아마추어로 참가해 공동 26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올 시즌 들어서는 게인브릿지 챔피언십에서 공동 5위,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에서 공동 14위, 기아 클래식에선 컷 탈락했다. 
타바타나킷은 시즌 다섯 번째 대회이자 첫 메이저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세계의 강자들을 압도하며 우승, LPGA투어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스타성을 겸비해 LPGA투어 흥행에 청신호가 될 전망이다.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번째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 우승을 차지한 패티 타바타나킷. 사진제공=Getty Images

LPGA의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미래의 스타로 주목받았다는 의미다. 알 만한 사람은 그의 ‘괴물 됨’을 알고 있었다. 

키 165cm에 생고무를 연상케 하는 탄력 넘친 몸매에서 나오는 폭발력 있는 스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고진영이 그랬듯 3라운드를 함께 경기한 펑샨샨은 경기 후 첫 소감을 “Amazing player!”라고 털어놨다. 펑샨샨은 “드라이브 샷을 300야드 넘게 날리면서 숏 게임도 잘 하는 그는 LPGA투어 신세대의 전형”이라며 “그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그의 스윙을 보고 놀라는 이유는 크지 않은 체구임에도 괴력의 힘으로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드라이브 샷을 날리고 정확도도 뛰어난 때문이다. 아이언 샷도 남들 하이브리드나 우드샷만큼 멀리 나간다.

1~3라운드 드라이브 샷  평균 거리는 326야드. 2라운드 339야드, 3라운드의 348야드로 라운드를 더할수록 거리가 늘어났다. 웬만한 파 5홀은 아이언으로 2온을 한다. 3라운드 11번 홀(파5)에서는 내리막에 페어웨이가 딱딱해 티샷이 363야드나 나갔다. 두 번째 샷은 7번 아이언으로 했다. 
마치 PGA투어의 브라이슨 디섐보가 LPGA투어에서 뛰는 형국이다. 정확도까지 뛰어나다는 점에선 디섐보를 능가하는 측면도 보인다. 
 
골프는 대하는 자세도 평범하지 않다. 첫 라운드에서 데일리 베스트인 6언더파 66타를 치고도 “신인이라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 함께 경기한 다른 선수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한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내일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저절로 골프가 되도록 하겠다(I need to stay calm. I will let the golf itself)”는 그의 말 속엔 보통 선수들과 다른 정신세계가 느껴진다. 

타바타나킷의 등장으로 한국 여자선수들이 주도하던 LPGA투어에도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태극낭자들이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던 LPGA투어에 새로운 주류로 등장했지만 이제 패티 타바타나킷과 주타누간 자매, 포나농 파트룸, 자스민 수와나푸라 등 태국 선수들의 도전이 거세어질 것으로 보인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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