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다니엘 버거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라운드 도중 골프공과 말을 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리키 파울러가 티샷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는 제사의식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언뜻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을 위해 음식을 차려 예를 올리는 제의(祭儀)가 골프와 닮았다는 것을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제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과 라운드를 위해 대비하는 과정을 꼼꼼히 비교해보면 기막히게 공통점이 많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전통적인 제사 문화가 많이 변했지만 이른바 뼈대 있는 가문에서 제사는 여전히 중대사다.

제사를 며칠 앞두고 제기를 닦고 향초를 준비한다. 정성스레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마련한다. 제사 직전에 일가가 모여 병풍을 펼치고 제사상을 차리고 지방을 쓴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고 조상에게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제사를 끝낸 뒤 가족들은 덕담을 나누며 음복을 하고 음식을 함께 한다.

골프의 경우를 짚어보자. 라운드 일정이 잡히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주요 사항으로 수첩이나 휴대폰에 입력된다. 생활의 리듬도 그날의 라운드에 초점이 맞춰진다. 음주를 자제하고 평소 연습을 안 하던 사람도 골프채를 꺼내 녹을 닦고 동네 연습장을 찾는 성의를 보인다. 볼을 넉넉하게 준비해 마크도 하고 여분의 장갑이나 티, 마크 등도 챙긴다. 계절에 맞는 복장도 미리 준비해둔다. 그리고 다소 들뜬 마음으로 라운드를 한 뒤 그날의 라운드를 반추하며 뒤풀이를 한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라면 제사에선 경건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데 비해 설레임이 따르는 라운드에선 진지함과 집중이 필수적이란 점 정도일 것이다.

첫 티샷을 위해 골프 백 덮개를 벗겼는데 클럽 헤드에 공 자국으로 생긴 흔적이 떼처럼 끼어있다거나, 첫홀 티잉그라운드에서 티가 준비되지 않아 캐디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공에 표시를 하지 않아 소유주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거나, 마크가 없어 캐디가 마크해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거나, 비 오는 날 여분의 장갑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등 제대로 준비 안 된 골퍼의 라운드는 정상적일 수 없다. 마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어수선하게 어물쩍 형식적으로 제사를 지내듯. 

제례의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같은 지역이라도 집안마다 다르다.

우리 집안에선 조상님에게 술을 올릴 때 술잔을 향불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린다. 집안 어른을 보고 자연스레 익혔다. 다른 집 제사를 유심히 관찰했더니 시계 방향으로 돌리기도 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도 했다. 세 번 돌리기도 하고 두 번 돌리기도 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꼭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칙 같은 예법은 없었다.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류는 동쪽, 육류는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조율이시(棗栗梨?;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진설) 등의 원칙이 전해지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그 집안의 식문화를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신사의 스포츠’라는 골프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에티켓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충실하게 지키는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스코어에 대한 강한 집착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골프의 속성상 역설적으로 속이고 싶은 충동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게 골프다. 적당한 예외, 묵인, 타협이 통하는 까닭이다.

기술적으로 들어가면 점입가경이다. 수많은 골프 교본과 교습가들이 한결같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스윙을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로 골퍼들의 그것은 교과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스윙하기 전 무심코 나타나는 버릇인 루틴(routine)은 천차만별 제각각이다.

스윙은 지문과 같아서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고 한다. 스윙하기 전후의 버릇인 루틴도 천태만상이다.
셋업을 취하기 전, 셋업을 할 때, 스윙을 할 때, 샷을 날리고 나서, 기막힌 결과를 얻었을 때 등등 플레이를 하면서 보이는 자신만의 동작이 루틴이다.

루틴은 불필요한 듯 보이지만 안정된 샷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 골퍼들 대부분이 불필요한 듯한 이 과정을 거쳐야만 자신이 마음먹은 샷을 날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동작을 생략하면 어딘가 어색하고 자신감이 없어져 결국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한다. 

자기 나름의 습벽은 자신감과 안정감을 심어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남 보기에 흉하다고 이미 굳어진 골프 버릇을 억지로 고치려 했다간 도리어 골프를 망치기 쉽다.
골프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나 동기가 아니다. 남의 시선도 아니다. 보기 흉한 스윙이나 버릇이라도 결과가 좋고 스스로 만족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떤 사람이 막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한 전통적인 쉬라드(shraddh)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쉬라드는 부모가 죽었을 때 저승길을 위해 기도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의식이다. 가족들이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집 개가 기도하는 방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그 남자는 의식을 망칠까 급히 일어나 개를 끌고 나가 베란다 기둥에 묶어 두고 의식을 진행했다.

몇 해가 지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쉬라드 의식을 행하게 되었다. 모든 절차를 빠짐없이 행하기를 원하는 아들은 베란다에 묶어둘 개가 없는 것을 알고는 의식을 중단했다. 그는 그것이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기도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그 의식을 행하셨다. 아버지는 개를 베란다 기둥에 묶어놓은 다음에야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와 기도하셨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아들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완벽한 의식을 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집에는 개가 없어 아들은 떠돌이 개를 찾아 온 동네를 뒤져야 했다. 아들은 가까스로 개 한 마리를 잡아다가 베란다 기둥에 묶어놓고서야 만족스런 표정으로 의식을 끝냈다.
이후 그 집안에는 수 세기를 지난 지금까지도 개를 잡아다가 베란다 기둥에 묶어놓는 것이 그 의식의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절차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오쇼 라즈니쉬의 「아름다운 농담」 중에서 ) 

제의의 권위는 합리성에 있지 않다. 의식에 참여한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골프의 루틴 역시 당사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베란다 기둥에 묶인 쉬라드의 떠돌이 개처럼 없어서는 안 될 의식의 중요한 절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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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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