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이 보여준 강박감의 파괴력

▲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 18번홀에서 고개를 숙인 샘 번스(왼쪽), 우승을 차지한 맥스 호마(중앙), 연장전에서 파 퍼트를 놓친 토니 피나우(오른쪽).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19~2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CC에서 펼쳐진 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는 골퍼에게 최고의 덕목은 과연 무엇일까 곱씹게 했다.

“골프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80%가 정신력, 나머지 20%가 기술”이라고 설파한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의 명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량은 프로골퍼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강인한 정신력이 더해질 때 승리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된다.

누구나 골프에서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인정하지만 대체 정신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눈앞의 희로애락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한 수면처럼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고, 추락할 때 좌절하지 않고, 잘 나갈 때 더욱 겸손하고, 위기를 맞아서도 흥분하지 않으면서 냉철함을 유지하는 능력, 닥친 상황에 지레 겁먹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자세, 쓰러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자세 등 정신력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다양한 정신력의 물줄기들은 모두 평정심(平靜心)이라는 큰 호수로 모여든다.

그렇다면 이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평정심은 골퍼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 경쟁을 펼친 선수들의 모습은 온갖 함정이 도사린 코스와의 싸움이 아닌 각자의 트라우마 혹은 강박관념과의 씨름을 보는 듯했다.

최종 순위와 관계없이 이번 대회에 출전해 컷을 통과한 선수들은 기량면에서 누구나 우승을 기대할 만하다.

특히 5타나 앞서 3라운드를 시작한 샘 번스(24·미국)에겐 PGA투어 생애 첫 우승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악천후와 일몰로 변수가 생기면서 맥스 호마(31·미국)와 토니 피나우(32·미국) 등에게 추월을 허용했고 결국 연장 두 번째 홀(파3)에서 파에 성공한 맥스 호마가 우승, 파 세이브에 실패한 토니 피나우가 2위를 차지했다.

샘 번스는 PGA투어에서 뛰기 시작한 2019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단독 3위)을 냈지만 첫승을 향한 강박감을 떨쳐내는 데 실패했다. 

그는 1라운드 64타, 2라운드 66타로 펄펄 날았다. 5타 앞선 단독선두로 3라운드에 접어들어 보기 4개에 버디 1개로 흔들렸다. 4라운드 들어 전반 4개의 버디를 건지면서 대망의 첫승을 이루는 듯했으나 후반에 4개의 보기를 범하면서 기회를 잃었다.
그에게 PGA투어 첫 우승은 절실했고 그 절실함이 강박감으로 작용했다.

2011년 데이빗 톰스가 크라운 플라자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는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고 골퍼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17년 아마추어로 바바솔 챔피언십 컷 통과를 한 뒤 2018년 2부인 콘페리투어에서 1승을 올리며 PGA투어 카드를 획득했다. PGA투어 대회에 11번 참가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을 포함해 8번 컷을 통과했다. 

2019년엔 26개 대회에 참가해 16개 대회의 컷을 통과하고 톱10에 세 번이나 들었다. 2020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고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챔피언십 공동 6위에 올랐다. 2021년 비빈트 휴스턴 오픈 2, 3라운드에서 1위로 달리다 최종 공동 7위, 세이프웨이 오픈에선 2라운드에서 2타차 선두를 달리다 최종 공동 7위로 마감했다.

최근의 상승세로 보아 그가 첫승의 강박감만 떨쳐낸다면 PGA투어 신예 강자로 부상할 재목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연장전에서 패한 토니 피나우의 ‘준우승 징크스’도 일종의 강박감으로 그를 압박한 것 같다.

피나우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8개를 뽑아내고 보기는 1개로 막아 데일리 베스트 7언더파 64타를 쳐 맥스 호마와 연장전에 돌입했다. 2016년 푸에르토리코 오픈 이후 5년 만에 PGA투어 통산 두 번째 우승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2017년부터 반복된 준우승 징크스가 그를 옥죄었다. 연장 1차전 버디 기회를 놓치더니 2차 연장에선 파 퍼트를 놓쳐 우승을 내줬다. 
그동안 준우승이 8번, 톱10이 44번이나 되는 것을 보면 우승 문턱에서의 좌절은 기량의 문제로 볼 수 없다. 반복되는 준우승이 가져다준 강박관념에 묶인 탓이 아닌가 싶다.

무섭게 샘 번스를 추격하던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이 3, 4라운드에서 급격히 동력이 떨어진 것도 아직 1승도 못 올린 선수에게 뒤쳐진 데 따른 자존심의 상처가 플레이를 흐트러지게 한 모양새였다. 

반면 세계랭킹 91위로 랭킹 15위의 토니 피나우를 누르고 통산 2승을 올린 맥스 호마는 유모차를 탈 때부터 자주 찾던 리비에라 골프코스에 대한 기억과 자신을 골프의 길로 이끈 우상인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대회라는 점 등이 강박감이 아닌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을 보며 골퍼 최고의 덕목은 어떤 경우에도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신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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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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