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에서 준우승한 이경훈 프로가 18번홀에서 버디 퍼트를 놓친 모습과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브룩스 켑카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주말골퍼의 라운드와 프로골퍼의 라운드 차이는 관객의 유무다. 

3~4명의 동반자끼리 라운드할 때는 조용한 숲길을 산보하듯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물론 동반자 간에도 보이지 않는 미묘한 대결 구도가 형성돼 긴장감이 없지 않지만 겉으로는 극히 목가적이다. 동반자가 아닌 사람이 옆에서 보고 있으면 영향을 받아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펼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프로골퍼는 갤러리가 있어야 정상 가동된다. 프로골퍼에게 갤러리 없는 골프는 관객 없는 연극처럼 어색하다. 지켜보는 갤러리가 적거나 없으면 맥이 빠지고 신이 안 난다.

지난 5~8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TPC스코츠데일 골프코스(파71)에서 열린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은 ‘QUIET’(조용히)라는 팻말이 없다. 음주와 가무, 고성의 응원이나 야유도 허용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로 갤러리 수를 하루 최대 5천명으로 제한했으나 선수들은 갤러리들에 자극받아 보기 드문 명승부를 펼쳤다. ‘QUIET’ 팻말 대신에 ‘MASK UP’이라는 팻말이 등장했을 뿐이다.

하루 평균 15만 명 안팎에 달하던 갤러리 수를 5천 명으로 제한하면서 광란의 도가니로 변하던 16번 홀(파3)에서 17번 홀(파4), 18번 홀(파4)로 이어지는 코스에 설치된 거대한 스타디움은 빈자리가 있었지만 갤러리들은 수가 적은 대신 높은 데시벨로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0여 명이 1타 차이로 선두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경마를 방불케 했다.

이경훈(29)과 재미교포 제임스 한(39·한국이름 한재웅)이 조던 스피스, 잰더 쇼플리, 스코티 셔플리, 브룩스 켑카, 카를로스 오르티스(멕시코), 스티브 스트리커 등 세계적 강자들과 벌인 각축전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오픈 2승(2015, 2016년)에 JPGA투어에서 2승을 올리고 2016년 PGA투어 2부인 콘페리투어를 거쳐 2019년 PGA투어에 입성한 이경훈은 최종합계 18언더파 266타로 잰더 쇼플리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 포함 총 70개 PGA투어 대회에 참가한 그의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이다. 2019년 4월 취리히 클래식에서 거둔 공동 3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PGA투어 통산 2승의 제임스 한은 한때 단독선두에 나서며 2016년 웰스파고 챔피언십 이후 6년 만에 우승 꿈을 이루는 듯했으나 15번 홀(파5)에서 티샷을 호수에 빠뜨리면서 타수 줄일 기회를 잃고 뚜벅뚜벅 큰 걸음으로 타수를 줄여온 브룩스 켑카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2019년 7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세인트주드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부상 등으로 고전해온 브룩스 켑카에게 이번 대회는 의미가 크다.

선두에 4타 뒤져 최종라운드를 맞은 그는 이글 2개와 버디 3개, 보기 1개를 엮어 6언더파 65타를 쳐 최종합계 19언더파 265타로 역전 우승했다. PGA 투어 통산 8번째 우승이다.

2019년 왼쪽 무릎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지난해에는 허벅지를 찢는 수술을 받는 등 잦은 부상으로 경기 출전도 줄였던 그는 “팬들 앞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행복하다”며 “내가 경기를 잘 할 때마다 주위에 팬들이 있었다. 팬들이 없으면 기운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결국 우리는 일종의 연예인이다”는 켑카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2017년 AT&T 페블비치 프로암,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디 오픈 우승 이후 승수(메이저 3승 포함 PGA투어 통산 11승)를 보태지 못하고 있는 ‘반듯한 청년’ 조던 스피스의 부활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의 부진은 설명이 안 된다. 결정적인 흠은 없는데 이유 없이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저스틴 토마스와 함께 PGA투어의 쌍두마차로 활약해온 스피스가 오랜 뒤안길에서 벗어나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3라운드에 10언더파를 몰아치는 모습은 바로 잘 나가던 시절의 그였다.      

이경훈과 함께 공동 2위에 오른 잰더 쇼플리는 역시 조용하면서 강했다. PGA투어 103개 대회에 참가해 4승을 올린 그는 준우승을 10개로 늘렸다. 이번 시즌에만 3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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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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