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장타자로 유명한 브라이슨 디섐보, 로리 맥길로이.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 Sure)’는 골퍼의 영원한 화두다.

이 화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골퍼는 없다. 누군가 골프채를 잡은 순간부터 잉태된 이 화두는 수백 년 동안 골퍼들이 매달렸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다.

‘Far & Sure’의 기원은 15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훨씬 전부터 골퍼들의 가슴 속에 이 화두가 자리 잡았겠지만 명문화한 것은 이때다.

제임스 6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찰스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내기 골프를 즐겼던 왕은 잉글랜드의 귀족 2명과 골프의 발상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서로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골프의 발상지라고 주장, 논쟁은 끝날 줄 몰랐다. 결국 잉글랜드 귀족의 제안에 따라 골프 시합으로 결판내기로 했다.

잉글랜드의 귀족 2명 대 스코틀랜드 왕과 스코틀랜드인 1명이 골프 솜씨를 겨루게 되었다. 스코틀랜드를 뒤져 찾아낸 골퍼는 구둣방을 하는 존 패더슨이었다. 그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골프에 관한 한 뛰어났다. 그는 신분을 이유로 극구 사양하다 왕의 간청에 못 이겨 시합에 나갔다. 

시합은 싱겁게 판가름 났다. 패더슨의 계속되는 묘기로 스코틀랜드 왕 팀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왕은 내기에 걸린 거금의 절반과 함께 상패를 만들어 선물했다.

패더슨 가의 문장에 골프클럽을 새겨넣고 그 밑에 왕이 직접 ‘Far & Sure’라는 글귀를 썼다. 
세 단어로 된 짧은 명구는 이후 모든 골퍼들의 영원한 화두가 되었다. 찰스 2세 역시 이 명구 때문에 골프 역사에 길이 이름이 남게 되었다.

지구촌의 골프 관련 규칙을 총괄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최근 드라이버의 길이를 최장 46인치(116.84cm)로 제한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종전 허용된 드라이버 길이는 48인치(121.90cm)다. 장타 경연대회에서는 50인치(127cm)까지 허용된다.

USGA와 R&A는 앞으로 한 달 동안 의견수렴을 한 뒤 이 규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PGA투어, LPGA투어, 유러피언투어 등의 모든 프로 골퍼들이 이 규칙을 지켜야 한다. 

USGA와 R&A의 드라이버 길이 축소 결정은 최근 선수들의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골프의 미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골프 장비의 발달과 선수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드라이버 비거리는 계속 늘어났다. 그러다 브라이슨 디섐보(27)가 근육 강화 단백질을 복용하면서까지 몸을 불려 드라이버 비거리가 400야드를 넘나드는 괴력을 발휘하자 PGA투어에 비거리 늘리기 경쟁이 촉발됐다. 

디섐보에 자극받은 PGA투어 선수들이 체중을 늘리고 새로운 스윙 테크닉을 개발하는가 하면 드라이버 길이를 늘려 비거리 경쟁에 나서자 USGA와 R&A는 이대로 방치하다간 골프의 미래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데 공감, 조치에 나선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 USGA 최고경영자는 드라이버 길이 제한과 관련, “앞으로 100년 이상 골프가 번창하기 위한 첫 번째 진전”이라고 말했다. 

비거리 증대의 역사는 곧 골프 장비의 발전사다. 클럽 헤드와 샤프트, 공을 만드는 소재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거리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PGA투어 선수들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통계를 보면 비거리 증대 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80년 PGA투어 선수들의 드라이버 평균 거리는 260야드였으나 1990년에는 265야드, 2000년 286야드, 2010년 291야드에 이르더니 2021년 2월 현재 295.6야드에 도달해 있다.

2월 현재 평균 드라이버 거리 순위는 브라이슨 디섐보가 1위로 329.2야드, 이어 로리 매킬로이가 321.7야드, 카메론 챔프 318.0야드의 순이다. 비거리 랭킹 78위까지가 평균 300야드가 넘는다. 

제동 없는 비거리 증대가 골프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라는 USGA와 R&A의 우려는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체력 보강과 기량 연마 등 인간의 능력에 따른 비거리 증대는 공정성을 해치지 않지만 골프 장비 등 인간 능력 외 다른 요소에 의한 비거리 증대는 그렇지 않다는 시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인간 능력을 겨루는 시합이 아닌 장비의 시합이 된다는 것은 골프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보는 것 같다.

골프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선수들의 비거리 증대는 엄청난 비용 부담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선 선수들이 쉽게 코스를 공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골프코스의 대대적 개조가 불가피하다. 전장을 늘리고 난이도를 높여야 하는데 모두가 돈이다.  

골프코스가 어려워지면 대중의 골프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려 자칫 대중의 사랑을 받는 현재의 골프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읽힌다. 
  
물론 선수들 간의 반응은 갈린다. 드라이버 비거리 경쟁을 촉발시킨 브라이슨 디섐보는 USGA와 R&A의 결정에 대해 “인간 능력 외 다른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공정성을 높인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한때 48인치 드라이버를 쓰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지금 사용하는 45.5인치 드라이버를 잘 쓰고 있다며 더 긴 드라이버를 쓸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한편 매킬로이는 드라이버 길이 제한에 대해 ‘시간과 돈 낭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반 골퍼들은 즐거운 골프를 원한다”면서도 프로에 대해 드라이버 길이 제한을 적용하는 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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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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