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연락도 되지 않지만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학창 시절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신춘 문예 데뷔를 꿈꾸던 그가 직장에 갓 입사했을 때의 이야기다.
제조 업체의 영업 담당이라 지방 출장이 잦았지만, 친구는 젊기도 했고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그 일이 “적성에 딱 맞다”고 말했다. 남들은 출장을 가라고 하면 싫은 내색이 얼굴에 팍팍 들어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게 일반적인데 반해 그 친구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아예 하루 전날 밤 기차를 타고 내려가 아침 일찍부터 여유롭게 업무를 보았다.

사진=골프한국


지금 돌이켜보면 친구의 당시 회사 선배들이나 경영진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직업적인 성실함보다는 단지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던 그의 성격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에겐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밤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던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종종 회자되곤 한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고, 그 또한 일을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일을 앞두거나 큰 경기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심정이나 각오에 대한 질문을 하면 “즐기겠다”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본다. “최선을 다하겠다” 혹은 “열심히 준비했다”가 아니라 “즐긴다”고 말한다. 과거에 ‘퇴로는 있을 수 없다’는 각오로 눈에 불을 켜고 돌진하던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느껴진다.

그러면 '즐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놀다, 누리다, 만끽하다, 좋아하다' 등의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필자는 골퍼로서 이 말을 곰곰이 되씹고 있다. 오랜 시간 골프를 했지만 정말 골프를 즐기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작은 승부에도 흔들리고 껄끄럽거나 미묘한 상황에서는 샷 전체가 무너지기도 하며 조급해하다가 스코어는 물론 기분을 망치기도 일쑤다. ‘더 이상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친 바로 이튿날 형편없이 망가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골프를 진정으로 즐기려면 스코어에 달관해야 할까?

며칠 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회 2연패를 노리는 ‘피겨 여왕’ 김연아와 '빙속 여제' 이상화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김연아는 이번 올림픽이 “즐기는 마지막 축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2연패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다”라고 덧붙였다. 이상화 역시 “이제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경기를 즐기겠다고 했다. "점수나 결과에 연연하면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기려고 한다"고도 했다.

골프 선수들도 다를 바 없다. 상위권에서 최종 라운드만을 앞두고 있는 어린 프로들도 “즐기겠다”고 외치며 필드로 향한다. 분명히 긴장되고 엄청난 압박감이 자리할 텐데 ‘어디에서 그런 여유가 묻어 나올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만큼 연습을 하지도 않지만, 이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탓인지 해가 갈수록 비거리만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 필자도 초조해하지 않고 즐기는 골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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